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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야 수진이. 올해도 어김없이 8월이 왔네. 해마다 8월이 되면, 아니 우리가 보통 여름이라 부르는 석 달(6-8월)동안은 유난히도 오빠 생각이 많이 나고 더 보고싶어져.
벌써... 햇수를 계산해 보니 16년이 지났네.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도 가끔 오빠 이야기를 하고 오빠랑 함께 지냈던 20년을 되짚어보곤 해. 그리고 오빠가 우리 가족이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오빠, 생각해 보니까 난 오빠한테 참 못된 동생이었던 것 같아. 한 번도 오빠한테 그냥 지지 않았잖아. 네 살이나 위인 오빠를 기어이 이겨먹으려고 마구 덤벼들고 고집스럽게 우겨대곤 했었던 거, 오빠가 떠난 이후에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오빠, 그거 알아? 나 중학교 다닐 때, 집에 돌아갈 시간에 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오곤 했잖아.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그 때 우리 반 아이들이 오빠한테 반해서 괜히 나한테 먹을 것도 사 주고 점수 따려고 했었어. 난 우리 오빠라서 잘 몰랐지만, 그 친구들 눈에는 오빠가 굉장히 멋있어 보였던가 봐. 잘난 오빠 덕에 내가 얼마나 어깨에 힘 주고 다녔었는지....
오빠가 떠나던 날, 난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교육방송을 보느라 오빠한테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변변히 못했어. 그게...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고 말야. 나중에 엄마한테 들으니 그날 따라 오빠가 자꾸만 뒤돌아보고 손을 흔들며 갔대. 혹시, 마지막이라는 걸 알아서 그랬을까? 그날은 참 평온했었어. 나른할 정도로 조용하게 지나가던 하루였어. 아버지를 찾는 목사님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야. 난 그 때, 오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게 점점 확실해지는 동안 이상하게도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엄마가 전화로 이모를 부르고 교회로 떠날 때 이모와 언니는 계속 살려달라고, 살려주실 거라고 기도했지만 난 우리 가족이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물론, 그건 내가 한 기도가 아닐거야. 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빠가 기적처럼 살아와 주기를 바랬으니까. 스무살 생일을 꼭 한달 넘기고 우리 곁을 떠난 오빠가 더 마음 아팠던 건, 그 즈음부터 우리 집 살림이 좀 나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해. 줄곧 대수술을 받느라 병원에 있는 나를 보러 왔다가 문병오시며 사 오신 과일이며 통조림을 보고 입원 한 번 해 보고 싶다던 오빠... 산소 호흡기를 잠시 빼고 머리를 감다가 호흡곤란으로 눈이 돌아갔을 때, 입원실 구석에 앉아 정신없이 통조림을 먹던 오빠 모습이 지금도 문득 생각날 때가 있어. 수술 마치고 집에서 회복할 때 하루에 두 번씩 내가 먹을 통닭을 사 오지만 오빠에게는 늘상 그림의 떡이었어. 언니와 오빠까지 한 마리씩 사 줄 형편이 아니었으니까. 다리 수술하기 전에, 자다 말고 소변이 마렵다고 하면 몇 시였든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일어나 도와줬지. 어쩌다 밖에서 뭘 얻게 되면 오빠 몫은 안 챙겨도 언니랑 내 건 꼭 챙겨오던 오빠... 메추리알 두 개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나눠주면서 무척이나 행복해 하던 모습은 형제라기보다 부모님 같았어. 그 중에도 기억에 남는 건, 오빠가 정성스레 준비한 내 생일파티야. 그 후에 더 맛있고 더 비싼(?) 생일 상을 받아도 그 때만큼 행복한 생일은 없었던 것 같아. 그건 오빠가 없는 주머니 탈탈 털어서 마련한 거니까. 우리 가족들에게 오빠는 참 자랑스럽고 든든한 기둥이었어. 하지만 어쩌면 오빠에겐 나와 언니의 존재가 또 다른 짐이었을지도 몰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우리를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오빠의 짧은 삶을 내내 짓눌렀을지도. 그 해 아버지 생신 날인가, 오빠 친구들이 안방에 죽- 둘러앉아 있는데 '왜 저 속에 우리 오빠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로 밤에 잠자고 아침이면 일어나 학교 가고 밥 먹고... 그렇게 사는 나도 참 밉고 싫었어. 오빠가 없는데 어떻게 모든 게 다 멀쩡하게 돌아가는지...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에 갈 때까지도 마음으로 완전히 오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어. 돌아오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으니까 머릿속으로만 죽었구나 할 뿐...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 건너편에서 오빠 목소리가 들릴 것 같고 초인종 소리가 나면 대문 앞에 꼭 오빠가 서 있을 것 같았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그러면서도 종종 지치고 힘들 때면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하늘을 보며 오빠가 날 보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기운 내자고 나를 달래곤 했어. 언젠가 다시 오빠를 만날 수 있다고. 금년엔 오랜만에 대천으로 수련회를 간대. 오빠와 헤어진 이후 해마다 여름이면 들리는 물놀이 사고 소식이 남 일 같지가 않아. 그래도 다행한 건, 지난 16년 동안 우리 가족들이 오빠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다는 거야. 그립고 보고싶어서 때로 눈물도 나지만 그건 슬픔은 아냐. 오빠 일 이후 난 오히려 죽음에 대해 훨씬 더 현실감을 갖게 됐어. 아주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나에게 닥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되더라. 그리고, 오빠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렇게 겁이 나지도, 두렵지도 않아.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오빠가 날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너무 미신적인가??
오빠가 왜 그렇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나야 했는지, 그 일 속에 어떤 뜻과 계획이 담겨져 있었는지 아직 다는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상황 속에서 우리 가족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향하게 됐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참 감사하게도 직,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셔서 16년을 견뎌오게 하셨다는거야. 목사님과 교회 어른들도 그렇고.
보고싶다 오빠. 사진 속에 오빠는 여전히 스무 살인데... 이담에 나 가면 반가와 할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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