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냄새
헤르만 헤세
다시 한여름이 우리를 떠났네
어느 늦폭풍우 속에서 죽어 갔지
비는 참을성 있게 철철 내리고 젖은
숲에서는 두렵고 쓸쓸한 향기가 나네
철 잊은 상사화가 풀밭에서 파리하게 굳고
버섯들이 솟구치듯 밀려 나와 무성해지고
어제만 해도 측량할 수 없이
넓고 환하던 우리 골짜기 가려지고 좁아지네
빛에 등 돌린 이 세상은
좁아지고 두렵고 쓸쓸한 향기가 나네
우리는 무장을 하네
생명의 여름 꿈을 끝내는 늦폭풍우에 대비하여.
구세주
자꾸자꾸 그 사람이 태어난다
경건한 귀에다 말한다 먼 귀에다 말한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고 우리에게서 새롭게 상실된다
자꾸자꾸 그는 외롭게 솟아야 한다
모든 형제들의 고난과 동경을 부담해야 한다
늘 새롭게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자꾸자꾸 신은 그만 떠나가겠다고 한다
천상의 것은 죄악의 골짜기로
정신은 영원한 정신은 살 속으로 흘러들려 한다
자꾸자꾸 이즈음의 날들에도
구세주는 오고 있는 중이다 축복하려고
우리의 불안,눈물,물음,탄식에
고요한 시선으로 응답하려고
그렇지만 어린이들의 눈만이 그 시선을 감당할 수 있기에
우리는 감히 마주 보지 못하는 그 시선.
새벽빛
고향,청춘,인생의 아침 시간
백 번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너로부터 나에게로 늦은 소식 하나 온다
바람에 불러서 그렇게 모든 심연에서 솟는다
폐허가 되어 영혼 속에 잠들어 있는 심연에서
감미로운 빛 네가 샘이 새롭게 태어나서!
언젠가와 오늘 사이에서
우리가 자주 자랑스럽고 부유하게 여겼던
삶 전체가 이제는 헤아려지질 않는다 나는 몰두하여 다시 귀 기울인다
이렇게 젊은 이렇게 영원히 늙은
동화의 샘이 만드는
잊힌 옛 동요들의 선율에
모든 먼지 너머에서 또 모든 혼란 너머에서
너는 빛을 내는구나 미망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노력의 모든 수고 너머에서
소리 높은 샘이여, 맑은 새벽빛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