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강물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눈물
인생이란
기쁨과 슬픔이 짜아올린 집
그 안에 삶이 있다
굳이 피하지 마라 슬픔을
묵은 때를 씻기 위하여 걸레에
물기가 필요하듯
정신을 말갛게 닦기 위해선
눈물이 있어야 하는 법
마른 걸레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오늘은 모처럼 방을 비우고 걸레로
구석구석 닦는다
내일은
우리들의 축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