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고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 없이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청포도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무련해두렴.
꽃(유작시)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쑨두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지락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라오길 기다리나니
한 바다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이육사(1904-1944.1.16(41세))
퇴계이황선생의 14대손. 본명은 이원록. 이육사는 그의 감옥에서의 수인번호.
본인이 바꿔 쓴 이름은 이활. 안동출신으로 일제시대 치열한 독립운동과
문필활동으로 민족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려 노력함.조선혁명간부군관학교 1기생으로 졸업
문약에 빠지지 않고 문무겸비를 추구.많은 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가 남긴 시들은
오늘날에도 읽는 한국인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와 각성을 주는 명시임.
독립운동으로 인해서 감옥살이를 여러 번 했고 41살에 북경감옥에서 옥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