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아들과 함께 2006년 08월 21일
작성자 장혜숙
지금 쓰고있는 자판은 때가 꼬질꼬질 타고 병균의 온상같다. 아들이 10년 째 쓰고있는 독일어 자판이다. 실제 독일어는 쓰지도 않는데 쓰레기 통 속에 넣거나 비눗물 속에 풍덩 담가 묵은 때를 벗겨야 할 이 더러운 자판을 십년 씩이나 쓰고 있다. 아들과 만나 며칠 째 밤잠을 잊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다 소화할 수도 없는 학문의 전문적인 강의를 나는 가끔씩 아는 척 해가면서 진지하게 듣는다. 그 아이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정리할 기회이기 때문에 듣는 대상이 되어준다. 나 또한 깜깜함 중에 눈이 밝아지는 기쁨이 크다. 여러가지 신변잡기도 흥미진진하다. 며칠 째 이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작년에 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고모부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이 아니다. 엄마가 친척들 집에 인사다니라고 강제로 시키는데 고모네 집에 가라고 한 날 챔피언스 리그 축구 결승전을 보느라고 안 갔고 그 뒤로 뵙지 못한 채 서울을 떠났다. 그것이 그렇게 후회가 된다고 한다. 앞으로 친척들 인사다니는 일은 최우선적으로 꼭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잠간 다니러 온 며칠 사이에 이 집 저 집 안부전화해야지, 다니며 인사해야지, 이런 일들이 젊은 아들에게는 꽤나 귀찮은 일임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나 자신도 그런 인사치례하며 사는 것이 귀찮은 건 사실인데. 그러나, 강제로 시키니 억지로라도 하고 사는 아이들이 고맙다. 아이들은 이런 일을 부모가 강제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하기 어렵다. 명절에나 생신에나 집안 어른들께 인사없이 지내고, 심지어는 집안 어른들의 장례식에 문상가는 일도 않고 사는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너는 안 가도 된다. 공부나 해라’는 어머니들의 태도이다. 아들은 인터넷에 유학생활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순전히 부모덕에 유학하면서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심금을 울린 한 아버지의 글을 잊을 수 없다며 아들은 숙연해졌다. ‘자네가 말하는 내용이 맞다. 나는 뼈가 부숴져도 할 수만 있다면 내 아들을 유학보내 자네처럼 그렇게 공부시키고 싶은데 뼈를 갈아도 안된다. 그러니 기왕에 기회를 얻은 자네가 계속 잘 해서 학문에 성취하기를 기원한다’. 이런 내용의 격려였다. 아들은 ‘아, 우리 아버지는 정말 뼈를 갈았구나!’하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격려의 글을 준 그분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단다. 그래, 아들아, 열심히 배우고 공부해서 남 줘라, 기회를 갖지못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가진 네가 딴 열매를 나눠줘야 한다. 그 아저씨의 격려에 보답하거라! 뼈를 갈아도 안 돼서 안타까와하는 많은 아버지들의 사랑이 너를 후원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그 분들의 몫, 그 아들들의 몫까지 네가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아 꼭 돌려주거라. 이제 떠날 짐을 꾸린다. 얼마 후엔 그 아이가 '정크 후드'를 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엄마 손 밥상을 받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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