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산행3 2006년 03월 18일
작성자 한명수선교사
산행3 - 호흡 옛 성인의 말에 생지안행(生知安行)이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평안하여서 거침이 없어야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얼마나 잘 조화롭게 이루어 나가는가? 아는 것을 잘 행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mission)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위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니, 언행일치(言行一致)이 하는 것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호흡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믿음을 아는 데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 답을 위해서 우리는 엘던 산의 정상에 올라야 한다. 자! 이제 믿음과 고백의 등반(登攀)을 시작하기로 하자. 지금은 교회 절기상 사순절 기간이다. 이 기간을 살아가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주님의 발자취를 쫓아 주님과 더불어 호흡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주님과 호흡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지’ 깨닫게 하는 분명한 자기 고백의 시간이 된다. 우리들은 모두 숨을 쉬며 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망각하고 사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표상(表象)이다. 오늘 여러분은 “지금 숨을 쉬고 있습니까?” “숨을 쉬고 있다면 어떻게, 어떤 숨을 쉬고 있습니까?” 그리고 “왜! 누구와 함께 숨을 쉬고 있습니까?”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를 앞서간 현자들은 여러 가지 가르침 속에서 호흡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종용(慫慂)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복식호흡, 단식호흡, 단전호흡 등등 많은 호흡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성악가들의 호흡방법, 목관악기 연주자들의 호흡방법, 마라톤 주자들의 호흡방법, 다양한 운동선수들의 호흡방법 등. 호흡의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호흡의 방법이 아닌 호흡의 원천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방법이야 누구나가 훈련을 통해서 그 질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호흡의 원천은 훈련을 통해서 담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우리의 절절함이 녹아 있어야 한다. 깊이 숨을 한 번 들이 쉬어 보자. 얼마나 감사하고 상쾌한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생기(숨)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셔서 사람의 생명이 시작되게 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삶의 산을 오르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원천과 근원에 대한 고백을 나누고자 한다. 2006년 겨우내 잠자던 물이 오르듯, 나무에 물이 오르듯,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의 시간을 허락한 엘던(Elden. Mt) 산에 오르기로 결심하고 산행(산기도)에 나섰다. 늘 그렇듯 산행의 초입은 아주 평범(平凡)하고 평탄한 길이다. 이 길에서 숨은 아주 고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파른 길이 나타나고 호흡 또한 점점 거칠어진다. 거의 모든 산이 그렇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그 가운데는 다시 평범한 길도 나타난다. 엘던산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그렇게 힘들기만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던 가파른 길 끝에는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평평한 길이 나타나곤 한다. 이곳에서 평범의 진리는 늘 고개를 넘어에 있다는 가볍지 않은 진리를 만나게 된다. 한 숨 돌리며 다시 길을 재촉하노라면 평평한 길은 언제 사라졌는지 가파른 길이 나타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파란 하늘이 손짓하며 어서 오라 한다. 마지막 숨을 고르고 깊은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 있을 고비(苦悲)를 생각하며, 다시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걷노라면 산은 나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일으켜 세우고, 따스하게 맞아주며 웃는다. 오늘은 산을 오르며 예수님을 생각했다. 산의 초입처럼 숨죽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던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전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 자신과 인내의 시간을 가졌는지 그려본다. 아버지의 뜻을 갈구하며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던 가장 인간적인 평온한 숨을 들이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안 예수께서는 스스로 광야로 걸음을 옮기시고 사탄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쉽지 않은 싸움 가운데서도 아버지와 더불어 숨 쉬는 것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아니 오히려 가슴 깊이 아버지의 숨을 들이 마심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보면 때를 기다리는 결정적인 믿음이 부족하다. 그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이 미숙(未熟)하고 미진(未盡)한 것을 볼 수 있다. 겨울의 추위는 느슨해진 우리에게,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경각심과 쉼을 주기 위함이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지나간 나의 과오를 덮어주고 씻어주기 위함이다. 그 눈이 녹아 대지에 흘러 들어감은 춥고 고통스러운 마음들을 포근하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만들어내기 위한 축복의 시간이며, 우리의 삶을 농축(濃縮)시키는 과정이다. 겨울에는 겨울의 때에 맞는 모습으로 나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봄은 약속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증거하며 나아가는 삶 가운데서도 언제나 아버지와 같이 호흡하는 것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이들은 예수님이 기도하는 장면들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숨이며 호흡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쉬는 거룩한 숨이고, 교제의 호흡인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고 지나가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육에 숨도 중요하지만 영의 숨도 내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숨인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의 뜻에 합당하고 당신의 뜻에 맞는 사람들만 만나서 같이 숨 쉬고 지내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뜻이 죄인들과 버림받은 사람들 가운데 가서, 그들과 숨을 토해내는 가운데 그들이 다시 하나님 본래의 숨결로 돌아오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많은 병자들을 만나서 그들과 함께 숨 쉬며 하나님 아버지의 생기를 다시 불어 넣어 주셨던 예수님! 창녀와 함께 숨 쉬기를 거절치 않으셨던 예수님!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세리와 함께 식사하시며 그들 가운데 숨 쉬기를 거절치 않으셨던 예수님! 이방인-타종교, 사마리아 여인-과 숨을 섞으며, 그들의 막힌 가슴 한 복판에 아버지의 생수의 숨을 불어 넣어 영혼을 열어 저친 예수님! 자신의 조국을 짓밟은 로마의 백부장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숨결을 나누어 주셨던 예수님! 백부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믿음의 숨을 칭찬하셨던 예수님! 간음한 여자의 새 생명을 위해 기꺼이 돌에 맞을 상황을 자초하시고 이 여자에게까지 자신의 진리의 숨을 나누어 주셨던 예수님! 유대인과 바리새인과도 진실한 영의 숨을 함께 쉬셨던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자비의 숨’, ‘인애의 숨’, ‘사랑의 숨’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그들과 더불어 호흡하기를 좋아하셨던 것이다. 여기에 고개를 넘어 ‘평안의 숨’을 고르시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아마 그들과 함께 숨 쉬실 때는 마치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면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평탄한 길에서 긴 숨을 토해내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에 매여 있던 서기관, 바리새인,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을 나무라실 때 내 뱉는 주님의 거칠고 거친 외마디 숨! 제자들의 허물과 깨닫지 못함을 보시고 책망하실 때의 안타까운 비명의 숨! 성전의 장사치들에게 토해 내셨던 절규의 숨! 이 순간은 아마도 산의 가장 가파르고 힘에 겨운 길에서의 숨과 같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탄식하며 격정의 노(怒)를 발(發) 하시면서도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의 숨을 느껴본다. 십자가의 영광을 앞에 두고 갯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부르짖던 예수님의 단발마!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를 하며 흘리셨던 눈물과 고뇌에 찾던 예수님의 깊은 숨결! 유대 관원에게 붙잡히어 고초를 겪으면서도 아직 아버지의 숨으로 돌아오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보며 흘리셨을 슬픔이 가득한 숨!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며 자신의 숨을 내어 주고 죄인들을 살리신 사랑과 평화의 숨! 산의 마지막 고비 길에서 몰아쉬었던 깊은 숨이 여기에 비할까. 그리고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면서 남기셨던 “다 이루었다”하시며 나누어 주셨던 구원과 회복의 숨! 이것이 산의 정상을 오르며 소아(小我)를 버리고 올라온 진아(眞我)가 맛보는 감격의 숨이다. 사흘 후 부활하시어 모든 사람들에게 주셨던 소망의 숨! 산을 내려 올 때 가뿐한 숨이 그 맛일까? 나바호 선교를 나와서 새해와 새 봄을 맞이한다. 2006년은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사랑의 숨을 붙들고 나바호 레져베이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찾고 원하는 무리들과 같이 호흡하셨듯이 그리고 아버지의 생기의 숨을 나누어 주셨듯이, 나바호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그들과 더불어 호흡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진리의 숨을 나누기를 간절히 원한다.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무엇을 위해 어떻게 숨 쉬기를 원하십니까? 부디! 주님의 숨결을 놓지 않기를, 그래서 참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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