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우리가 꽃들에게 지은 죄 2005년 04월 02일
작성자 장혜숙
사진 자료실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볼 것이 많아서 봄이라지요?" 아주 오래 전에, 지금 보다는 훨씬 한가하던 시절에 썼던 수필이 그렇게 시작되는데........ 파일을 뒤져보니~ 있다! 아직 봄의 한가운데는 아니지만, 매일 한 시간 씩만 더 자는 것이 '바램'까지 되어버린 지금, 옛날의 봄 노래를 다시 읽어본다. 수필 <우리가 꽃들에게 지은 죄> 볼 것이 많아서 <봄>이라고 했다던가. 봄은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를 징검징검 건너뛰면서 손에 잡히지도 않은 채 훌쩍 여름으로 도망갈텐데. 색깔로 오는 봄, 소리로 오는 봄, 냄새로 오는 봄, 내 마음 한 곳을 깔짝깔짝 건드리며 아는 체 해달라고 귀찮게 구는 봄이다. 그래, 나 너 봄이 오는 저 먼발치에서부터 너를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너의 걸음을 마음속으로 재촉하며 기다리기까지 했지. 그런데 잠시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저만큼 느릿느릿 다가오던 네가 갑자기 내 안에까지 확 들어와 버렸구나. 이젠 봄, 너가 내 안에 있는 거니? 꼭꼭 챙겨서 널 가둬둬야겠다. 넌 언제나 그랬잖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슬그머니 없어져버렸지. 아, 봄 소리가 왜 드높은지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났다. 흘러내린 바지춤처럼 쭈그러져 그 안의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자루, 윗목에 버티고 있던 그 절박한 봄날의 양식 자루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봄의 통과의례, 그 헐렁한 쌀자루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눈에 안 띠게 되었을까. 그래서 우리들은 겁 없이 봄 노래를 부른다. 겁없이. 대지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 눈앞이 아른아른 하고, 횟배앓는 촌부의 눈앞이 현기증에 아른아른하고, 맨발로 들판을 내닫는 아이들의 눈이 노오란 꽃다지에 아른아른하고, 내 유년의 봄은 그렇게 아른아른한 모습으로 왔었다. 아지랑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이고 아른아른하게. 이미 계절 깊숙이 들어앉은 봄을 노래하며 샛노란 수선화가 거리 곳곳에서 활짝 웃고있다. 개나리꽃은 진한 유화물감을 붓으로 찍은 듯하고, 수선화는 수채화 물감을 정성스레 펴 바른 듯 청초하다. 수선화가 시들어갈 무렵부터는 튤립이 핀다. 튤립이 함초롬히 오므리고 있던 꽃잎을 활짝 열어 젖힐 무렵이면 장미가 피기 시작하고… 내 마음도 그런 순서를 밟으려나? 온 마당이 환한 꽃등을 밝히면 내 마음도 환히 피어나려나… 봄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데 나는 꽃 몇 송이를 하나 씩 자세히 들여다보며 가슴이 서서히 굳어짐을 느낀다. 왜일까? 꽃은 앞 다투며 피어나고 있는데, 곁으로 지나가는 봄을 내 안에 꽉 잡아두었는데, 왜 내 마음은 오히려 굳은살처럼 단단해지는 걸까? 문득 꽃이 자연스럽지 못함을 느낀 때문이다. 한 송이 한 송이가 너무 선명하여 디지털 화면에 클로즈업된 사진같이 느껴진다. 윤곽이 또렷한 꽃 송이가 마치 실물과 똑같이 만든 인조조화처럼 느껴진다. 기억을 더듬어본다. 언제부터였더라... 반짝종이로 턱을 받혀준 거베라, 종이접기로 접어놓은 듯한 백합, 미소를 잃은 장미... 그랬다. 비록 생화이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생화들이 내겐 마치 조화처럼 생명을 잃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꽃들은 틀 속에 갇힌 정물(靜物)이 되어있었다. 꽃잎처럼 부드러운 실크로 섬세하게 만든 조화들, 투명 플라스틱으로 물방울까지 붙여둔 생화와 똑같은 조화들을 많이 봐왔음이다. 수반 속에 갇힌 생화의 정형적인 꽃꽂이에 익숙해졌음이다. 백합, 장미, 라벤더, 민트 향이 늘 생활 주변에 함께 했음이다. 온실에서 한 겨울에 피는 봄 꽃들, 냉장고 속에서 여름을 나고 가을부터 잎이 빨개지는 포인세티아를 예사로 보아왔음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온실 속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죽은 듯 피어있는 꽃들에 익숙해졌음이다. 아, 풋풋한 풀내음 풍기는 들판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야생화를 잊고 있었음이다. 오늘 내가 생화같은 조화에 감탄하고 조화같은 생화에 가슴이 굳어짐은, 조화를 꾸밈에 태연하듯 생화를 함부로함에 태연한 때문이다. 꽃은 꽃 하나로 존재할 수 없다. 바람이 꽃이 살아있음을 알려줘야 하고, 향기가 꽃이 살아있음을 알려줘야 하고, 생명은 생명끼리 통하는 이치를 풀벌레들이 알려줘야만 꽃은 내 가슴 속에도 생명의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이다. 꽃은 제철 바람에 그 꽃잎이 나부낄 때 우리의 단단한 가슴을 보드랍게 풀어준다. 보랏빛 아이리스, 잉크빛 패랭이 꽃은 그 차가운 색으로도 우리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고, 주황색의 튤립, 샛노랑의 후리지아는 그 따뜻한 색으로도 우리에게 선선한 청량감을 전해줄 수 있다. 꽃은 정물이기를 거부한다. 바람속에 한들거리며 벌나비와 달콤한 밀어를 나누기를 갈망한다. 봄비에 차가와진 내 입술이 따뜻함을 그리워하듯, 꽃들도 그렇게 갈망하는 것이 있다. 꽃을 품은 봄, 봄을 품은 꽃, 꽃을 품은 내 마음, 내 마음을 품은 봄. 봄을 한 자락 끌어다 덮고 나른한 몸을 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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