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관계, 그리고 버팀목 2005년 03월 10일
작성자 장혜숙
옛날에 영국에 있을 때 쓴 수필입니다. 오늘 기도의 밤에 목사님께서 몇 번 거듭 사용하신 <버팀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갑자기 옛날에 쓴 이 <관계>가 생각났습니다. 물론 나의 최종적인 버팀목은 세상의 관계보다는 주님이겠지만........ 그러나, 주님 안에서 세상의 관계들도 모두 소중합니다. 오늘 기도의 밤, 이 관계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관계>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이 깜깜해진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배반이랄까, 낮에 느끼는 어둠은 어둑어둑한 게 아니고 깜깜하다. 밤의 어둠엔 태연하지만 낮의 어둠엔 당황한다. 지금, 그렇게 깜깜하다. 난 익숙한 것들을 더듬는다. 익숙한 것들이 손에 닿으면 안심이 된다. 낡은 포대기를 끌어안고 있는 편안함이다. 그 포대기에 배어있는 젖내는 달착지근한 것만은 아닌데, 시금털털한 냄새도 묻어있는데, 그래도 낡은 포대기는 편안하다. 이렇게 깜깜한 대낮에. 처음에 고국을 떠나 외국으로 나올 때 그 동안 관계를 맺고 있던 많은 사람들과 송별회를 했다. 헤어질 때는 그 동안 사이가 돈독했거나 무심했거나 상관없이 모두들 다 서운해 했다. 가까웠던 사람들은 이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로 담담한 표정이었고, 아마 그런 결정에 대한 내 뜻을 다 안다는 의미였으리라, 별로 절친하게 지내지 않던 사람들은 오히려 사뭇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의식하지 않고 지내던 나의 존재가 이별의 소식과 함께 갑자기 부각된 까닭이리라. 외국에 뚝 떨어져 나와 있으니 외로움은 느낄 수 없고 오히려 홀가분하고 한갓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외로울까봐 염려해주는 사람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나는 날아갈 듯이 홀가분했다. 일생에 처음 받아보는 시간의 선물이랄까. 아무런 구속없는 생활이 마치 새털날개를 얻은 듯 행복했다. 얽히고 설킨 관계들을 저 멀리 두고 쏙 빠져나온 쾌감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통과해온 여행길이 날던 날갯짓 그대로 과거로부터 날아온 것이 아니라, 좁고 어둡고 긴 터널, 숨쉬기도 어려운 긴 터널을 힘겹게 뚫고나온 길이었나보다. 터널을 다 빠져나왔을 때 마음 턱 놓고 심호흡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나는 터널 속에서 너무 숨죽이고 있었나보다. 처음 얼마간 나는 새로운 세상의 신비로움에 들떠있었다. 혼자라는 느낌은 내 언저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을 옭아맨 복잡한 관계의 끈을 어쩌지 못하고, 점점 더 조여오는 그 끈에 묶여 사는 많은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자유로운 새였고, 날아다닐 수 있는 축복받은 여자였다. 그러나, 나 자신도, 많은 내 친구들도 예측하지 못한 복병이 어느날인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외로움이란 놈이 그리움이란 동맹군을 이끌고 날선 칼을 내게 들이밀었다. 시퍼렇고, 차갑게 번쩍이는 날선 칼이었다. 곧 나를 베어낼 것 같은 공포에 몸이 떨렸다. 칼의 금속은 너무 차가워서 나는 추위에 떨었고, 날은 너무 예리해서 나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갑자기 점령군처럼 들이닥친 외로움, 게다가 꼬리를 달고 온 그리움, 그것들의 기세에 나는 휘청거렸다. 휘청휘청, 곧 주저앉을 듯, 무너질 듯, 쓰러질 듯, 그렇게 휘청거리건만 내가 지탱할 아무 것도 없었다. 최후의 결정권을 가져보지 못했던 나에게 매사에 마지막으로 서명을 해야 하는 임무는 버거웠고, 작은 범위지만 최고지도자의 고뇌와 고독을 실감하기도 했다. 시 어른들과 남편의 곁을 떠나와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끔은 지혜열로 몸이 달뜨기도 했고, 성장통으로 뻐근하기도 했지만 쑤욱쑤욱 커나가는 만족감도 있었다. 나는 서서히 <관계>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던 나를 옭아매고 있던 관계의 끈들. 얽히고 설킨 끈들은 섬세하게 많이 얽힐 수록 더욱 더 튼튼하다. 내가 휘청거릴 때 그 끈들, 나를 옭아매고 있는 그 끈들에 묶여서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를 지탱해주는 것은 굵은 뿌리 하나가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많은 잔뿌리들이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은 하나의 굵은 지지대가 아니라 그 지지대에 나를 얼키설키 묶어놓은 질긴 끈들이다. 나는 다시 낯익은 관계 속에 뛰어든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맺기도 한다. 컴퓨터 앞에 사람들이 붙어 앉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었다. 인간관계가 붕괴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그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그 차가운 기계를 통하여 옛 관계들을 탄탄히 동여매고 또 새로운 만남을 이뤄나가고 있다. 머리만 커다란 낯선 외계인 같은 이 컴퓨터를 통하여 나는 매일 나의 관계들을 확인한다. 탯줄로 이어진 관계도, 사랑으로 묶여진 관계도, 부담스러운 수직의 관계도, 옆으로 길게 뻗은 수평의 관계들도, 나는 매일 내 곁에 불러 모은다. 모니터는 차갑지만, 그 안의 기계는 열을 받아서 그 열을 식히는 홴(fan)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맞대면하고 있는 컴퓨터는 차가운 기계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은 따뜻하고,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뜨거워진다. 나는 그렇게 나와 관계 맺은 이들과 체온을 나누고 있다. 그 체온은 명주실을 타고 온 아낙네의 맥박보다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벗어나고자 바둥대던 숱한 관계들. 그러나 오늘 나는 그 끈의 한쪽 끝을 잡고 다시 맴돌기를 시작한다. 내 몸에 서서히 끈이 얽히고 있다. 이제 그 끈은 나를 완전히 포박할 것이다. 독일에서 영국으로 왔듯이 다시 또 다른 나라로 옮기더라도, 지구에서 달나라로 옮기더라도 나를 묶은 관계의 끈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꼬옥 조여서 가끔은 호흡곤란이 오기도 하고, 너무 느슨해져서 몸이 허전해지기도 하고, 내 스스로 그 끈의 탄력을 조절할 수 있든 없든, 나는 영원히 <관계>의 끈에 묶여 있을 것이다. 기름 때에 절어 꼬질꼬질한 묵은 끈, 그 위로 아직 때묻지 않아 푸슬푸슬한 새로운 끈이 자꾸만 겹겹이 동여질 것이다. 묵은 관계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쌓여서 파묻히는 것. 그 묵은 것들의 더께 위로 새로운 것들이 켜켜이 덮이겠지. 새로운 만남은 내가 숨쉬는 한 끝이 없으리. 혹, 나의 흔적이 어딘가에 조금 남게 된다면, 나는 숨이 멎은 후에라도 누군가를 새롭게 또 만나리라. 관계들의 그물 망 사이로 흐린 빛이 들어오는 듯, 어둠에 익숙해진 눈조리개가 커지는 듯, 깜깜한 날씨는 서서히 밝아지고 있다. - 2001년 4월 North Harrow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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