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송구영신 (2) 2004년 12월 16일
작성자 장혜숙
유리병에 담긴 가을. 과실차 담기는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버린 계절치레이다. 철따라 매실, 수삼, 모과, 유자, 생강, 대추를 설탕과 꿀에 버무려 유리병에 담아둔다. 금년엔 마냥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가 이미 겨울이 시작된 뒤에야 뒤늦은 과실차를 담갔다. 우리 식구들은 차를 즐겨마신다. 우리 집의 과일차는 음료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일종의 약도 되며, 가족간의 대화시간을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예전엔 겨울에 수정과를 끓였었다. 사실 수정과는 아니다. 생강과 계피와 황설탕을 넣고 커다른 들통에 한 가득 끓여 베란다에 내어놓고 며칠동안 마시는 계피가 든 생강차이다. 밖에서 추위를 몰고 돌아온 남편에게 그 생강차를 뜨겁게 데워서 주면 아주 좋아한다. 아이들은 살짝 살얼음이 앉은 통에서 그대로 퍼 마시며 시원한 맛을 즐긴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땐 아이들도 뜨거운 생강차를 마신다. 이번 가을엔(초겨울) 모과, 유자, 생강차를 담고, 대추 시럽을 만들었다. 씨를 뺀 대추를 오랫동안 약한 불에 푸욱 고아서 체에 거른 다음에 황설탕을 넣고 졸여 잼으로 먹기도 하고, 꿀을 섞어 시럽으로 만들어 차를 끓여마시기도 한다. 팬케익을 먹을 때 캐나디안 메이플 시럽 대신 이 대추 시럽을 끼얹어 먹어도 좋다. 올해엔 이 대추차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냉동실엔 늘 호두, 잣, 은행, 땅콩, 대추가 들어있다. 거의 일년 내내 두고 먹는데 점점 줄어들어 제돌이 돌아올 무렵엔 다 먹게 된다. 그런데 금년엔 대추가 많이 남아서 잼도 만들고 시럽도 만든 것이다. 햇 대추가 나온 지 세 달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묵은 대추가 많이 남아있었다. 묵은 곶감도 몇 개 남았다. 저장 식품들을 다음의 햇것이 나올 때까지 잘 조절해가면서 소비하는 것이 알뜰한 주부임엔 틀림없다. 크리스챤이 알뜰해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물건들은 몰라도, 먹을 것이 제 돌을 넘기고 햇것이 나올 때를 넘기도록 남아있다는 것은 크리스챤의 알뜰함이 아니라 크리스챤으로 범하지 말아야할 죄악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건 분명 죄악이다. 알뜰함을 빙자한 낯뜨거운 욕심일 뿐이다. 남들과 함께 나누지 못한 조막손이의 욕심!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일년 간 먹을 것을 일년동안 내 손안에 지니고 있지 못할 것 같다. 한 달치도, 하루 치도, 한 끼 치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새해엔 식품을 해묵히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오래 지니고 있다가 내가 소비하지 못한 것을 남에게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신선하고 가장 좋은 상태, 내 입맛에 아주 맛있어서 혼자 먹기 아까운 상태라면 남과 나누리라. 묵은 해를 보내며 새해에 대한 다짐을 이것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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