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초심으로 돌아가며 2004년 09월 20일
작성자 이희균
저는 통상 예배시간전 2,30십분전에나와 마음도 가다듬고 시간의 여유를 갖는 편입니다 또한 주보를 한번 쭈욱 보는재미가 습관화되된듯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도 좋지만 주보의 "믿음으로읽는글"과 "마음으로읽는글"도 거의 빼놓지않고 보는편입니다, 오늘 주보에 "마음 하나가 바뀌면"을 보고 가슴에 뭉클함과 고마음을 느꼈읍니다 감동를 주는글이 이번뿐만은 아니지만 유독 그러한 느김을 더받은것은 글중에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때로는 경외심이 느껴지기도 합니다,우리 부모 세대들이 그렇게 살아온 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이런구절이 있더군요 짤막하게라도 지난날의 그 어려움을 알아주시는것같아서 이였읍니다, 40세대에게는 부모세대요 20대이하에게는 대강 할애비 세대이지요 어디 요즈음 세태가 그런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구세대 들 지난세대들은 요즈음 한창 욕만 먹고 있다보니 목사님의 측은지심이 더더욱 감사하게 와 닿는것이지요,우리 구세대들 실수도 많았고 부족한점도 많았고 잘못도 참 많았읍니다 매도 당하여도 싼데가 있읍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런 말씀을 들으니 칠년가믐에 단비이지요 조금만 너그러이 보아주시면 우리 늙은이들 자책속에서도 조그마한 보람도 느낄수 있읍니다 그져 보수다 (보수는 틀림없이 보수입니다) 수구다 꼴통이다 사대다 냉전세대이다 반통일세력이다 세태의 흐름에 역행한다 몰라도 한참 모르는 ㅇ동이다 몰아치니 막다른 골목에 들어간 느낌입니다 그러던 상황속에서의 배려이니 더가슴에 와 닫는것이였읍니다 그래서 애당초 박범희 선생께는 칭송을 하여주려고 한 것이 어디에 무었을 계재하였다는 알림대로 들어갓다가 하도 일방적인 글만 전재 하였기에 섭섭한 마음들어 몇자 적었든것입니다 다른 뜻은 없었읍니다 박선생께서 이해와 용서 있기를 바랍니다 남을 헐뜨드면 내가슴부터 아푼법 아니겠어요, 그리고 목사님말씀에는 신앙생활에 촛불이되고 길잡이가 될뿐아니라 앎의 문을 열어 주실대도 많습니다 오늘 주보에서 말씀하신 까마귀색갈도 물빛에 대하여도 공감하였읍니다 선입견때문에 이미지에 사로잡혀 검다고 단정하니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요 말과 문자의 한계나 모호함에이르러서는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각자가 느끼는 필링은 더더욱 천차만별 이겠지요 저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조물주 하나님만이 절대적이라고 말입니다, 정숙씨가 올린 글보았읍니다 얼마나 혼란스럽습니까 이북동포는 뿔난 도깨비로 배웠는데! 요새는 혹 이남 구세대들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지요? 정숙씨가 대학원생이라하니 아마도 20대일듯 십습니다 대화를 하지 안으려고 하였다가 박범희 선생게 발뺌겸 사과하던참에 몇자 적습니다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를 한다기에 내가 초등학교시절 존경하던 선생님을 소개하는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읍니다 작년인가 단임목사님 대신 김재흥 목사님이 아름ㄴ다운 모임을 주재하실때 학교나 선생님중에 생각나는것 있으면 간단하게 적어보란 말씀이 있었읍니다 그때도 몇자 그선생님에대하여 쓴적이 있읍니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때의 단임선생님이십니다 학교는 강원도와 가까운 산골 경기도면소재지 학교입니다 아마도 년도는 서기 39,40년인듯 싶습니다 경성사범을 나오신 남자 선생님이십니다 시대상은 중일전쟁이 한팡일때, 그선생님 연세는 약 25세정도 였을겁니다 공부 잘가르치시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아무튼 출퇴근 하시는것을 ㅁ못보았으니까요 나는 면소재지에 집이 있엇고 한 오분의 이 정도는 십리 이십리 밖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요 면소재지 학생은 여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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