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가슴에 소중한 씨앗 하나 품고.... 2004년 08월 11일
작성자 장혜숙
서울의 기온이 금년들어서 가장 높았다는 어제, 36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친정 큰고모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고모님은 향년 94세로 돌아가셨다. 주일 아침 예배전에 나는 고요히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제는 고모님의 영혼을 거둬가시라고, 우리 큰 고모님에게 참 평안을 주시라고, 주님 품안에서 행복한 안식을 취하게 해달라고. 예배 후 고모님댁에 갔을 때, 방금 숨을 거두어 체온이 채 식지도 않은 고모님의 잠자듯 고요한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엔 슬픔이 차오르기 보다는 흔들림없이 고요한 마음의 평정속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잠자듯, 정말 잠들 듯 고요히 돌아가셨고 시신은 참 평화로와보였다. 하관예배를 드리면서, 취토를 하면서 내 마음 속에 고모님을 추모하는 한 귀절이 떠올랐다. “위대한 별이 지다!” 그런데 우리 고모님에게 ‘위대한 별’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 분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분도 아니고, 학문의 위업을 쌓은 것도 없고, 위대한 사상가도 아니며, 세상을 위하여 몸바쳐 정의의 깃발을 들고 나섰던 분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림에 매어 평범하게 살다간 한 할머니일 뿐이다. 그런데 왜 내 마음속엔 “위대한 별”이란 말이 떠올랐던 것일까? 하관식이 끝날때까지 나는 고모님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다고 그런 거창한 수식어 ‘위대한 별’이라는 말까지 생각난 것일까, 고모님이 평생 한 일들을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고모님이 평범한 아주머니에서 평범한 할머니로 늙어 돌아가신 것처럼, 고모님이 평생 하신 일도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나의 큰 고모님이 하신 일은 그저 배고픈 사람에게 밥먹이고, 잘 곳없는 사람 잠재워주고,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공부시켜준 일일 뿐이다. 결식아나 결식 노인들에게 급식봉사를 열심히 한 분으로 유명하지도 않고, 오갈곳없이 한뎃잠자는 사람들을 집안에 끌어들여 남들 눈에 띨만큼 집안이 북적거리지도 않았으며, 거액의 장학금을 희사하여 독지가로 소문이 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고모님이 소리소문없이 밥을 먹여준 사람의 수는 열손가락을 몇번씩 꼽아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단 하룻밤 또는 며칠씩 기거하도록 집에 들인 사람들의 수도 아주 많고, 남들이 알게모르게 장학금으로 쓴 돈도 평생을 합하면 아주 큰 거액이 된다. 고모님은 1000만원이나 1억원의 기부금은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을 때까지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한 사람이 옆에 있는데, 시침 딱 떼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모님은 눈에 보이는 대로 밥 한 끼씩 먹여주었고, 쌀 한 말씩 사 주었고, 손닿는 대로 10만원씩, 100만원씩 장학금을 주었다. 고모님의 이러한 행동은 봉사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면, 그것이 고모님 삶, 본인의 삶 자체일 뿐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그 분의 삶 자체였다.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이렇게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평생 삶 자체로 생각하며 살아온 고모님. 그 분에게 남은 것은 교회에 헌금한 많은 액수의 헌금영수증도 아니요, 이름 석 자 기록된 어느 곳의 장학금 기부자 명단도 아니요, 사회봉사를 열심히 했다고 탄 상장도 아니다. 그럼 우리 고모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조용히 잠든 주검 뿐이다. 하관 예배에서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씨앗을 뿌려서 싹이 나는 씨앗이 있고, 싹이 나지 않는 씨앗이 있는데,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돌아가신 우리 고모님은 때가 되면 싹이 나는 씨앗이라고. 어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값어치있는 씨앗 한 알 땅에 묻고 돌아왔다. 그와 똑같은 씨앗 내 가슴에도 소중히 간직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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