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아침묵상9 2004년 05월 24일
작성자 시연
묵상본문 - 렘31:15-30 땅이 울부짖는다는 이야기가 믿겨지세요? 우리 귀에는 안 들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들으시는가 봅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을 때도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창4:10)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거처는 하늘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그 하늘은 땅을 배제한 '곳'이 아닙니다. "너희가 사는 땅, 곧 내가 머물러 있는 이 땅을 더럽히지 말아라. 나 주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함께 머물고 있다."(민35:34) 우리가 사는 이 땅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땅의 울부짖음을 들으십니다. 특히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아우성을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조인 야곱의 아내 '라헬'도 굴비두름처럼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후손들을 바라보며 땅에서 비통하게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 울음 소리는 '구해 달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너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다. 네 아들딸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온다. 나 주의 말이다."(17) 희망은 있습니다. 그 희망은 근거는 하나님이 땅의 부르짖음과 땅 위에 살고 있는 이들의 울부짖음과 탄식을 듣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처럼 하나님의 꿈을 밭갈지 못하는 이들을 책망하시기도 하지만, 그 책망은 분풀이가 아니라 백성들의 완고한 마음의 지각을 깨뜨리시려는 세심한 배려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시련의 풍랑이 몰려와도 희망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습니다. 소나무는 상처를 관솔로 만들고, 감나무는 상처를 무늬로 만듭니다. 사람이 그만 못해서야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고통 없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그분의 은혜를 꿰뚫어보아야 합니다. 어둠이 지극하면 새벽이 가까운 줄 압니다. 철저히 무너지고 흩어지면 세우고 모을 때가 가깝습니다. 세상은 그런 리듬을 타면서 새롭게 창조됩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날이 다가왔다고 선포합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땅을 보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 정의의 보금자리, 거룩한 산이여, 주의 복을 받아라"(23b) 이것이 하나님이 꿈이군요. 믿음은 하나님의 꿈을 함께 꾸는 것이라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머무는 곳이 어디이든지 그곳을 '정의의 보금자리'로, '거룩한 산'으로 만들어야겠네요. 척박한 땅을 개간하는 농부처럼, 돌은 골라내고 지력을 돋기 위해 퇴비도 해야겠지요? 사랑과 이해와 관용과 배려의 퇴비를 우리 살림살이의 마당에 넉넉하게 뿌려보십시오. 좋은 곳을 차지하려는 노력보다는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을 '살기 좋은 땅/살맛 나는 공동체'로 만들려고 주체적으로 애쓸 때 우리 마음은 이미 천국이 아닐까요?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나오는 한 대목을 묵상하며 하루를 살아보렵니다. "오 진리시여, 내 마음의 빛이시여, 내 어둠은 다시 내게 말을 말게 하소서. 어둠 속으로 굴러가 나는 어두워졌어도 그 속에서, 그 속에서도 당신을 애틋이 사모했었습니다. 길을 잃었을 적에도 당신을 생각하고 등 뒤에서 돌아오라시는 당신의 소리를 들었건만 소란한 것들의 법석 탓으로 간신히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허덕이고 할딱이며 이제야 샘이신 당신께로 돌아가오니 아무도 나를 막을 자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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