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스승은 제자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바라는가? 2004년 05월 19일
작성자 장혜숙
내가 초등학교 4학년에 새로 맞은 담임은 어머니 또래의 여 선생님이었다. 새 학년에 올라가 글짓기 숙제를 했는데 제목이 <우리 선생님>이었다. 얼굴이 하얗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예쁘고 목소리도 고운 언니 같은 젊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우리 담임 선생님은 엄마처럼 나이 많은 아줌마 선생님이라 실망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선생님의 머리가 아가씨들처럼 길지 않고 엄마처럼 짧은 파마머리인 것도 실망이라고 썼었다. 신식 옷을 입지 않고 짧은 한복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선생님의 모습에 실망했다는 내용도 썼던 것 같다. 여형제가 없는 나는 젊은 언니 같은 선생님을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며칠 후 그 글짓기 숙제로 상을 탔고, 선생님은 현관 입구에 있는 게시판에 그 글짓기 종이(원고지도 아니었다)를 붙여놓았다. 친구들은 내가 선생님을 나쁘게 썼다고 수근거렸다. 왜 이렇게 썼냐고 직접 나에게 따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때 선생님은 정말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던 것일까? 왜 나에게 글짓기 상까지 주셨을까? 상을 받을 만큼 잘 쓴 글이 아니었는데………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 그렇게 실망했다는 내용을 쓴 것이 학급 친구들 사이에선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 글이었는데 나는 글짓기 상을 받은 것이다. 흐릿한 기억속에서 선생님의 한 말씀은 지금까지 또렷이 기억난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고싶은 말을 그대로 쓰고, 생각나는 대로 꾸밈없이 다 쓰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글짓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거나, 글짓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날 선생님의 격려의 말씀과 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글짓기를 두려워하지는 않게되었다. 어떻게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매이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나타낼 수가 있게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노래를 한번도 불러보지 못했었다. 아마 들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생때 같은 큰 아들을 잃고 아예 산속으로 들어가 칩거생활을 하던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 다니는 오빠들도 집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서 나는 유배지와도 같았던 산에서 나와 바깥 세상구경을 하게되었고, 학교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듣고 배우게 되었다. 선천적인 음치인 내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서 혼자 노래를 부를 때 선생님은 틀렸다고 다시 부르라고 했고,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 후로 나는 절대로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토록 길고 오랜 세월동안. 50여년 전 내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배우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변함없이 크다. 고정관념에 묶여있는 어른 밑에서 창의적인 아이로 자라기는 어렵다.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자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른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가르치는 대로 잘 따라오라는 것인가? 내가 하는 대로 너도 그대로 하면 실수없이 틀림없을 거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나의 가르침 대로 내 뒤를 열심히 쫓아오는 제자들의 모습이 흐뭇한가? 물론 가르침의 영역은 광범위하여 따라야할 범위의 것과 거스르고 벗어나야할 범위의 것이 있다. 흉내내야할 것과 전혀 다르게 해야할 것이 다 따로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상식선에서 말하더라도, 선생의 가르침 밖의 것을 발견해내는 제자를 인정해주는 선생 밑에서 아이들은 무한대로 발전할 것이다. 파란 하늘과 녹색바다를 그리는 선생이더라도, 아이가 노란 하늘과 붉은 바다를 그릴 때 어깨에 손을 얹고 칭찬해주는 선생이 아이의 장래에 발목을 붙잡지 않는다.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는 아이들을 고정적인 틀속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는 대신 새로운 길을 인정해주는 어른이 아이와 더불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는 문을 닫는 어른보다는 문을 열어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가두는 어른이 있는 만큼 풀어놓는 어른도 있어야 세상은 조화롭게 발전하고,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있어야 어제와 내일이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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