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수업 거부 당한 날의 일기 두 편 2004년 04월 30일
작성자 권혁순
2004.04.28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다시 발생했다. 동맹휴업, 수업거부. 작년 2학기 때에도 편입생들이 수업 거부를 한 적이 있었다. 임용정책과 관련해 교육청 항의 방문과 농성이 있으면서 수업을 거부했다. 나는 원칙대로 수업 시간에 강의실에서 기다리다 결국 모든 학생들을 결석처리하고, 발표 예정자들의 발표 점수는 모두 0점으로 처리했다. 물론 보강은 없었고. 발표 예정자들 중 일부는 발표 점수를 못 받는다는 것 때문에 눈물을 보이기도 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이번에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일단 수업커뮤니티에는 교무처에서 전달된 결석처리하라는 공문을 그대로 게시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수업 한 시간 빠지는 것이 별 일은 아니다. 다만 학생들의 마음 속에 큰 상처가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대학생 때에도 수업 거부는 여러 번 있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아직도 생생하다. 시청앞, 을지로, 청계천 등을 전전하던 그 시절. 두렵고 떨리던 시절을 보낸 지금, 사회적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배웠어야 할 전공 내용에 대한 지식은 창피한 수준이 되고 말았다. 대학 2-3학년을 허송세월했으니 말이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사회 제도의 문제로 인해, 개인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 2004년 4월 29일 어제 밤을 하얗게 샜어야 하는데, 이제 체력이 딸리는가 보다. 나이는 못 속이는지, 쩝. 새벽 2시가 넘으니 눈이 아프고 눈물이 나와서 도저히 밤을 샐 수가 없었다. 28일까지 창의력 문제 5문제를 내서 보내야 하는데, 도저히 창의적인 문제가 떠오르지 않는다. 밤을 새면 나올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씨름하여 겨우 3문제를 냈다. 풀라고 내는 문제인지, 풀지 말라고 내는 문제인지 나도 모를 문제를 내고 보니, 나 자신도 정답이 헷갈린다. 화학 분야는 어찌어찌 하면 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화학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문제도 내야 하니 걱정이다. 눈이 하도 아파와서 중간에 포기하기를 서너번 했던 것 같다. 1교시 보강도 있고 해서 2시 30분에 불끄고 집으로 돌아갔다. 조용한 새벽 길은 너무도 좋다.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서 집으로 가고 싶지만 참았다. 생활한복 차림에 새 자전거가 웬지 안 어울릴 것 같아 차마 타지 못했는데, 새벽에는 아무도 없으니 타고 갈까 했으나, 내일 출근길이 걱정되었다. 내일 일을 걱정하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었나보다. 1교시 체육과 보강. 예상은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발표조원 3명이 전부였다. 차라리 오지나 말지.... 발표조원 중 하나가 전날 전화로 통화한 후에 걱정이 되었는지, 수업에 오겠다고 했으니, 나도 부지런히 준비하여 9시에 나갔지만, 수업이 제대로 될 지 걱정이었다. 예상과 달리, 수업은 너무 좋았다. 나까지 네 명이 둘러 앉아서 학생이 준비해온 발표를 들으면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수업을 했다. 실험도 자유롭게 하고. 점심 시간에 영재교육원 전임연구원 환영 모임이 있어서 근교로 나갔으나, 식사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크림 스프와 포도주 한 잔만 먹고 정신없이 돌아왔다. 실과과 학생들이 수업을 어찌할 지 연락이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공연히 나만 점심 굶었다. 거창한 정식이었는데 말이다. 학교 식당에서 카레 라이스로 곱창을 채우고, 다음 시간 준비를 했다. 6교시 초등과. 발표조만 온다고 어제 연락이 왔었는데, 한 명의 학생이 더 들어 왔다. 그것도 10여분이나 늦게. 출석부를 보니, 이미 2번이나 결석을 했기에 더 이상 결석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학생이었다. 발표 점수와 출석 점수 때문에 할 수 없이 나온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정말 배우고 싶어 오는 학생이 없단 말인가? 80년대 한창 수업 거부할 때, 우리과 선배 하나는 유일하게 학생들의 제지를 뚫고 수업에 들어 갔다고 하던데. 결국 그 선배는 우리 과를 수석 졸업하고, 어찌 어찌 하여 나의 지도 교수가 되었다. 9년전 내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이유는 교사라는 직업의 매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교생 실습 나가면서부터 교사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교사가 된 이후에는 더욱 교사가 싫었다. 나태하고 무사안일한 교사들을 보면서, 그런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불쌍했고, 공부하기 싫은데도 집에서 가라하니까 억지로 와서 멍청하게 앉아 있는 학생들이 싫었다. 요즘 들어 교수 활동 중에 동기 유발을 엄청 강조한다. 맘에 안든다. 별 이상한 짓들을 다 해 가면서 동기를 유발시키겠다고 쇼를 한다. 교실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 자체로 동기 유발은 끝났으면 좋겠다. 배우고 싶다고 앉아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바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교실을 꿈꿨다. 그런 교실이 있을 수 있나~. 그래서 관뒀다. 내가 담임하던 반 52명의 학생들 중에서 이런 저런 문제로 학생부에 끌려가는 바람에 30명만 겨우 교실에 남아 수업하던 모습이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요즘은 한 교실에 36명 정도 있는데도 학생이 많다고 하던데, 내가 담임할 때 우리반은 52명이었다. (하기야 내가 중학교 때는 우리반에 70명이 있었다) 그러다 30명으로 줄어드니 정말 우리반은 수업하기 좋은 반이라고 모든 선생님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럴 수 밖에. 공부하기 싫어하는 애들은 모두 책상 가지고 학생부 앞에 가서 근신하고 있으니... 요즘은 의무 교육으로 인해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억지로 와야 한다. 그리고는 학교에 엄청나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아이들의 인성 교육이니 공중 도덕이니, 별의별 것을 다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이런 것은 부모들이 가정에서 해야지 왜 학교에서 하는가? 학교는 그저 지식의 전수 기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 전인교육을 많이 주장하는데, 그런 것까지 학교에 요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교 선생이 무슨 죄라고, 그 모든 것을 다 책임지냔 말이다. 한 두명도 아니고 수십명을 어찌 돌보라고. 인격의 형성은 가정에서, 공공의식은 사회에서 책임지고, 학교는 단순히 지적 활동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도덕이니, 음미체 등 교과는 다 사라져도 될 것이다. 과학도 역시 배우고 싶은 아이들만 배우고...학교에 가는 부담이 한결 줄어들 것이다.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에게 억지로 가르칠 수 없다. 동기 유발 할 때만 반짝 흥미를 보이다 본론에 들어가면 시들해지는 교실 모습이 보기 싫다. 그나마 대학에서는 나름대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수업에 열심히 임한다고 생각했기에 대학 교수의 길을 선택했다. 평소 내가 하고 싶어하던 연구도 자유로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다행히,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다들 모범생 출신이라 그런지, 아니면 장차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서 그런지 열심히 배우고자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수업 시간이 좋다. 비록 회식이 잦아서 항상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있는 예비 실험 시간에 고민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 나의 큰 낙이었다.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깨닫고자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지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 즐겁다. 그런데, 동맹휴업. 수업 거부라니. 그 와중에 수업에 온 학생은 학점이 두려워서 온다는 느낌이 나를 슬프게 한다. 다른 교수들은 휴강해 주는데, 나만 유별나게 행동한 죄 값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슬프다. 내일도 1교시부터 네 시간의 수업이 나를 기다린다. 전쟁의 와중에도 피난지 부산에서 임시 연합 대학이 설립되어 강의가 계속되었다던데, 지금의 현실에서도 자신의 앎을 확장시키고자 나의 수업을 원하는 그 누군가를 내일 아침에 교실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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