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참 웃기는 유혹 2004년 04월 25일
작성자 장혜숙
아침 시간, 목욕탕에서 머리를 빗고있는데 어느 집에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아파트 생활이 그렇다. 방음이 잘되었다고 해도 목욕탕에서는 이웃의 소리가 파이프라인을 타고 들려온다. 무슨 곡인지는 모르나 들려오는 클라식 곡이 내 마음을 흔든다. 거울 속엔 나와 비슷한 낯선 내가 서있고, 거울 밖의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갑자기 그리워지는 건, 휴일의 느긋한 브런치(아침 점심을 겸한 식사) 식탁이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선율, 식탁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햇살, 레이스 커튼을 간지럽히는 아침 바람, 매혹적인 커피향, 구수한 잡곡빵과 감칠맛 나는 버터, 그리고 달걀 프라이. 나른한 몸을 게으르게 움직여 커피를 한잔 마시면 서서히 힘이 솟기 시작하는 느긋한 휴일 아침이 그리워진다. 짐짓 두 팔을 쭉욱 뻗으며 기지개도 펴고… 이것은 잊어버릴 만하면 다시 생각나곤하는 휴일 아침의 브런치에 대한 그리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이후로 몇 번 가져보지 못한 느긋함이다. 아침 첫새벽 시간을 하나님께 바친 후로 가끔 찾아드는 또 하나의 유혹은 새털처럼 가볍고 뭉게구름처럼 포근한 오리털 이불 속에서 뭉기적거리는 느긋한 게으름이다. 게으름에 대한 그리움이 가끔 나를 기습한다. 단 하루도 전쟁이 그치지 않는 세상, 부의 그늘에서 춥고 배고픈 삶을 연명하는 절대 빈곤층,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들려오는 절규…….. 내가 그리워하는 것, 나를 유혹하는 것이 늦은 아침까지 이불 속에서 뭉기적거리는 게으름이나 느긋한 브런치 식탁이라니…………. 수도꼭지를 튼다. 물이 쏟아진다. 이웃에서 들려오던 음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손을 씻는다. 마음도 씻는다. 거울 속의 나는 바쁘게 움직인다. 거울 밖의 나는 벌써 목욕탕 밖으로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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