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봄앓이 2004년 04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옛날 우리 시골집엔 나무가 많았었다. 왠지 모르지만 앵두나무는 우물가에 있었고, 복숭아나무, 고염나무(이것은 나중에 오빠가 감나무로 접붙여서 감나무가 됐다), 살구나무, 사철나무, 라일락, 그리고 몇가지 나무가 더 있었다. 사철나무는 동백나무 잎사귀와 같이 두꺼운 진녹색의 갸름한 잎이 겨울에도 청청하게 빛나고 늦가을부터는 빨간 열매가 맺힌다. 졸업식 때 꽃다발을 만들 때 꼭 필요한 나무다. 그 시절엔 졸업시즌에 생화를 구한다는 게 보통 사람은 어려운 일이었고, 이 사철나무 가지를 바탕으로 하여 물들인 습자지로 만든 조화를 몇 송이 엮어서 꽃다발을 만들곤 했다. 한 겨울에 그 푸른 나뭇잎에 빨갛게 매달린 열매가 어찌나 고왔던지! 살구나무에 열린 살구를 매일 바라보면서 열매가 빨리 익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제대로 익은 살구보다는 풋살구를 먹은 숫자가 더 많으리라. 고염은 첫서리가 내리면 죄다 훑어서 항아리 속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겨우내 숫가락으로 퍼먹었다. 이제 잊을 수 없는 라일락의 추억을 안 쓸 수가 없다. 4월이면 라일락이 피는데 보라색과 흰색 두 그루가 있었다. 라일락은 꽃모양보다는 그 향기가 더 매력적이다. 그 당시 우리들은 들꽃을 엮은 꽃다발을 잘 만들었었는데, 가을이 되어서 국화라도 흔하게 피면 그 국화꽃 다발이 또 있었고, 봄철엔 단연 우리집의 라일락이 으뜸이었다. 장미꽃 다발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었다. 사철나무 잎사귀에 종이꽃 몇송이만 어울려도 훌륭한 꽃다발이던 시절이니, 향기가 그윽한 라일락 가지를 꺾어서 만든 꽃다발은 황홀한 지경이다. 지금은 뜰이 조금이라도 있는 집이면 목련이 없는 집이 없지만 그땐 목련도 흔하지 않았다. 봄철엔 우리집 라일락을 따라갈 꽃이 없었다. 더구나 보라색은 흰색보다 더 낭만적인 느낌이었다. 그 집을 떠나온 지가 벌써 몇십년이 지나다니 ! 지금은 성악가가 된 선배언니가 무슨 행사 때마다 강당에서 부르던 "아, 세월은 잘 간다. 아이 아이 아이(아 야 야) ~ " 이 노래가 생각난다. 그 언니는 두손을 모아 가슴 높이로 올려놓고 약간 턱을 치켜든 모양으로 그 노래를 참 잘 불렀다. 그땐 소풍이나 가야 유행가를 불렀지 우리가 모여서 노래라도 부르고 놀 때는 단골 레파토리가 '그 집 앞' '아, 목동아' '바위고개' '울밑에선 봉숭아야'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벨텔의 편질 읽노라 ~ '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보니 ~ ' '나 그대에게 바치려하는 이 한 노래를 ~' 주로 이런 것들을 불렀다. 제목을 잘 몰라 가사를 그냥 썼다. 우리는 '그 집 앞'을 '그지밥(거지밥)'이라고 장난을 했었다.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얼마나 비웃을까만 그 때는 그것도 장난이라고 하며 놀았다. 봉숭아가 맞네 봉선화가 맞네 해가면서 따지고… 오빠는 최무룡이 부른 '외나무 다리'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그런 노래를 부른다고 어른들에게 많이 혼났다. (이해가 가시는지?) 내가 라일락을 꺾어다 준 친구들을 생각해본다. 유감스럽게도 그 대상이 모두 여자친구다. 향기로 치면 우리집 뒤 언덕에 있는 성당의 아카시아 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라일락이 4월을 넘기며 시들해지면 5월 중순께부터는 아카시아가 온 동네를 장악한다. 나는 섬세한 사춘기 여학생이라서 그렇다치고, 강한 남자인 우리 오빠까지도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시인이 되곤했다. 지금 우리 남매는 시인이 아니지만, 그 시대엔 시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詩. 그냥 보통으로 하는 말을 띄엄띄엄 행을 바꿔서 써놓고 우리는 그게 시라고 우겨댔다. 단어끝의 서술하는 부분은 뚝 짤라서 버리고 뗑강 단어만 던져놓고 그게 詩라고 우겨댔다. 지금 내가 이 얘기를 꺼내면 우리 애들이 말도 안 된다고 길길이 뛰지만, 사실인 걸 어쩌나? 쥐 잡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학교에 쥐꼬리를 잘라다 내야만 했다. 숫자도 정해져있었는데 그건 잊어버렸다. 하여튼 우리는 무 꼬리에 재를 묻혀서 숫자를 채워내고, 오징어 다리의 빨판을 훑은 후 재를 묻혀서 내고 그랬다. (이건 라일락을 위한 추억에서 너무 품위가 떨어지는 얘기) 지금은 라일락이 필 계절이 아니다. 아직은 좀 이르다. 그러나 오늘 이 글을 이렇게 속성으로 써대는 것은, 어젯밤 꿈에 라일락을 봤기 때문이다. 라일락이 활짝 피어있는데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깨고 나니 어찌나 안타까운지… 우리 애들은 저희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만 얘기한다. 나는 그전에 내가 어떻게 했었다는 얘기만 늘어놓는다. 그 중간에 건널 수 없는 세월의 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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