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어미란 무엇인가? 아내란 무엇인가? 2004년 02월 04일
작성자 장혜숙
아들과 통화를 했다. 여러가지 좋은 일들로 상기된 그 아이의 한껏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짐은 어미로써 당연한 일. 사스보다 조류독감보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는 바로 <행복 바이러스>. 행복 바이러스는 전염도 빠르고 그 영향력도 강하다. 모든 전염은 측근에서부터 온다. 측근들은 언제나 행복 바이러스 뿐 아니라 불행 바이러스도 혼자 가지고 있지 못하고 전염시킨다. 나는 일년 내내 앓는다. 그렇게 번번히 앓으면서도 면역항체가 형성되지 못한 나. 내겐 측근들이 전해주는 바이러스를 퇴치할 아무런 면역이 없다. 그러나 앓는데는 아주 강하다. 온 몸이 신열에 휩싸여도 끄떡없이 잘 견뎌낸다. 행복한 병에 걸려도 일상은 들뜨지 않고 고요하게 진행되고, 불행한 병에 걸려도 일상의 속도는 멈춤없이 여전히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 내게 바이러스를 옮겨준 측근들은 나를 참 독한여자라고 평한다. 아이들은 나를 강하다고 하지 않는다. 독하다고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독할까? 송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는 흥분에 들떠있었다. 전문 스튜디오에 가서 CD녹음을 한다는 소식, 교수님에게서 칭찬 들었다는 소식, 프로듀서가 자신의 연주를 아주 열정적이라고 평했다는 이야기, 그 열정을 자신이 맡은 학생들의 지도에도 쏟아부어야겠다는 다짐…. 이런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흘러왔다. 그 아이의 에너지가 곧 폭발할 것만 같다. 덩달아 내 가슴도 뜨거워진다. 좋은 기분에 맞장구치며 축하의 말을 몇마디 건넨다. 그러나 나는 곧 무덤덤한 사람처럼 건조한 말을 한다. “폭발물이 터질 때 바닥이 튼튼하면 폭발물만 터지고 바닥은 끄떡없이 그대로 있는데, 바닥이 부실하면 폭발할 때 바닥까지 다 무너져내린다”고. 이런 뜬금없는 말에 익숙한 아들은 곧 대답한다. “예, 잘할께요!” 찬물에 열을 식힌것처럼 그 아이의 음성이 가라앉는다. 한 옥타브는 너무 내려간 것같다. 몇 음계는 좀 올려주자. “돈이 있을 때 떼어서 저금을 해둬야지 돈 떨어지면 그 돈 찾아서 유용하게 쓰지, 돈 있을 때 다 써버리면 나중에 돈 떨어지면 어떡하니, 그런 것처럼, 너 지금 좋은 기분을 조금 떼어서 통장에 넣어두어라. 항상 좋은 기분을 조금씩 나눠서 저축해두고, 앞으로 기분 나쁜 일이 반드시 생길텐데 그 때는 저축해둔 좋은 기분을 조금씩 꺼내어서 쓰도록 해라.” 어미란 무엇인가? 아내란 무엇인가? 태풍의 눈이다. 광풍의 한 가운데서 가장 평온한 핵이다. 가족이, 가정이 뜻하지 않은 거센 바람에 휩쓸려 휘청거릴 때에도 그 핵 태풍의 눈은 잠잠하고 평화롭다. 그러다가 광풍은 물러가고 그 핵의 평온은 그대로 유지된다. 어미는 무슨 일을 하는가? 아내는 무슨 일을 하는가? 기름을 붓는다. 찬물을 끼얹는다. 살붙이들이 세상살이에 지치고 탈진하여 그 에너지의 불꽃이 가물가물할 때 기름을 듬뿍 부어주어 꺼져가는 불길을 되살려준다. 흥분하고 열에 들떠 위험한 불똥을 튕기며 에너지를 소진하면 찬물을 끼얹어 식혀준다. 누구에게나 기름을 보충해주거나 찬물로 식혀주는 일을 유효적절하게 조정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가족에게는 그 역할의 가장 적임자가 바로 나라고 감히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땐 꿀물을 타주고 초코렛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땐 뱉어낼 지경으로 쓴 약도 먹인다. 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수없이 많은 기도의 화살을 날린다. 밥을 푸면서, 수저를 놓으면서, 빨래를 널면서, 빨래를 개면서, 다림질하면서,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뒷 모습을 보면서, 양치를 하려고 칫솔을 집으며 함께 꽂혀있는 칫솔을 보면서………. *친교실에 들어오신 분들 중에 누구(?)는 앞으로 친교실에 글을 올려주세요. 설마 2월이 넘어가도록 이 글이 마지막으로 남아있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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