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안경 찾기 2004년 01월 30일
작성자 도배
아침 잠에서 깨어나 잠시 묵상기도 한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안경을 찾아 쓰는 일이다. 밤에는 안경을 벗으면 잠들기 전 묵상기도 하는 일 외엔 다른 아무 일도 없다. 안경을 벗는 일이 하루의 마감이다. 콘택즈 렌즈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잠잘 때 외에 안경을 벗는 일은 씻을 때나 화장할 때 뿐 언제나 안경을 쓰고있다. 안경을 벗는 일이 이렇게 적은데도 가끔은 안경을 어디에 벗어두었나 찾을 때가 있다. 잠자리에서 깨었을 땐 거의 침대머리에 있는데, 다른 일로 벗어둔 경우엔 자리가 일정치 않아 찾게된다. 안경을 쓰지않고 안경을 찾는 일은 쉽지않다. 눈으로 찾기 보다는 벗어놓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찾는다. 그런데 이 기억이란 게 마치 안경 벗은 시력처럼 흐릿하여 애를 먹인다. 아무리 길어야 한 시간도 넘지 않는 시간인데 안경을 어디에 두었더라, 하면서 두리번거릴 때가 많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엔 화장을 하다보니 그이가 컴퓨터를 한다. 어! 그 의자에 내 안경 벗어두었는데! 설마 깔고 앉지는 않았겠지… 안경을 어디에 치웠는지 물었더니 책상 위에 잘 모셔 두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안경과 함께 살아온 사람은 나 혼자 뿐이 아니라 남편도 내 안경과 함께 살아온 것 같다. 안경이 제자리에 없을 땐 제일 먼저 나서서 찾아주고, 오늘처럼 의자에 벗어두는 경우엔 앉으려다 깜짝 놀라 주춤하곤 안경부터 치운다. 그래도 안경은 다행이다. 남의 눈에도 쉽게 띠고, 벗어둘 경우가 거의 정해져 있으니 몇군데 더듬으면 찾는다. 콘택즈 렌즈를 사용할 땐 남편 덕을 참 많이도 봤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목욕탕 바닥에 흘린 소프트렌즈를 찾아준 것 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이도 자신의 안경을 찾게 되었다. 돋보기를 쓰면서부터 정말 대책없이 여기저기 놓고 다닌다. 거실에, 화장실에, 침실에, 사무실에, 이렇게 따로따로 하나씩 두도록 여러 개를 준비했다. 그런데 어떤 땐 한곳에 여러 개의 안경이 모여있고, 정작 쓰려고 찾으면 다 어디 갔는지 눈에 띠지도 않고 이런다. 우리 부부의 안경 찾기는 아마도 안경이 필요 없어지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합력하여 안경을 찾는데 열심이다. 우리 자신이 서로의 안경이 되어주면 좋겠다. 눈 앞이 흐릿하고 몽롱할 때 서로를 밝혀주는 안경이 되어주면 좋겠다. 혼탁한 시야를 맑게 비쳐주는 잘닦은 안경이 되어주면 좋겠다. 어두운 길을 더듬더듬 더듬을 때 환히 밝혀주는 안경이 되어주면 좋겠다. 안경을 찾아주는 부부가 아니라, 안경 그 자체가 되어주는 부부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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