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홈 커밍 데이 2004년 01월 20일
작성자 chs
명절을 지내는 며느리들(나이가 많든 적든)의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비명을 들으며 ‘Home Coming Day’를 한번 생각해봤다. 어느 날, 그날은 각자 자기 성(性)씨들을 찾아가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론 이것은 남의 성씨들과 함께 살고있는 결혼한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날이다. 재미삼아 한번... 이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나는 친정으로, 내 친정 엄마는 또 엄마의 친정,그러니까 나의 외가로(이렇게 되면 친정에 가도 친정엄마를 못 보게될거야), 올케도 친정으로, 결혼한 시누이도 친정으로(다른 성씨인 신랑이랑 아이들은 떼놓고), 남자들도 알아서 자기 성씨들끼리 모이는 거지(거기에 아직 남의 성씨 집으로 안 간 딸들이 끼겠지)... ... 이건 종친회가 되는 건가? 그러나 그와는 다르다. 종친회 때는 그 집으로 시집온 여자들이 남의 성씨들을 위해 부엌살이를 얼마나 심하게 하는지! 이렇게 가지를 치고보니 얘기가 좀 복잡해졌다. 자,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령층에 따라 각양각색의 희비가 엇갈리는 그야말로 대 서사시가 되려나? 엄마도 올케도 다 친정으로 가버린 나의 친정, 친정부모님 다 돌아가신 늙은 남매들의 모임, 엄마는 친정가고 어린 애들은 아빠에게 주렁주렁 매달리고, 아내는 친정가고, 시집간 여동생은 돌아오고, 제각기 분가한 후 오롯이 자기들끼리만 모이는 동기간들... ... 가지에 가지를 뻗어 복잡하기 그지없는 상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재미있다. 한번 이런 날들을 시도해봄은 어떨까? 그래봤자, 여자란, 올케도 없고 친정엄마도 없는 친정에 가면, 결국은 아버지, 오빠, 남동생, 조카들의 밥상 차리는 신세를 면치 못할 건 뻔한데... 그래도 내 성씨들을 위해서 하는 일은 즐거우려나? 우리 집에서 한번 시도해볼까? 나이 95세가 되시는 큰 고모님에서부터 나이 70을 넘긴 막내 고모님까지(다섯분 중에 둘은 먼저 가셨다), 그러고보니 우리 친정 할머님은 2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7남매를 낳으셨네, 놀라워라!- 환갑이 된 큰 오빠, 부엌이 어딘지 모르는 작은 오빠, 무시무시한 숲처럼 울창한(?) 남자 조카들... 무엇 하고 놀지? 어른들의 연세로보아 6.25 이야기도 너무 현대사에 속하니, 아마 일제시대 얘기를 시작하시겠지. 오빠들은 가끔 맞장구 칠 수 있을는지... 조카들은? 다 함께 무얼 한다지? 막막하다 막막해. 먹는 건 또 뭐가 좋을까? 부드러운 묵무침 또는 갈비? 국물 시원한 잔치국수 또는 스파게티 볼로니아? 고소한 빈대떡 또는 얇은 피짜? 또 막막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Home Coming Day는 부엌데기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비록 다른 성씨를 위한 먹거리를 준비할지언정 차라리 내 부엌이 손에 익기나하지. 아! 중요한 걸 깜박 잊었네! 95세가 되시는 큰 고모님은 어떻게 오시나? 누가 모시고 올까? 그 집엔 우리 고모만 혼자 다른 성인데, 같은 성씨가 있어야 모시고 올텐데... 아들도 손자도 며느리도 다 다른 성씨인데 어쩌나, 혼자는 못 오실텐데... 어디서 모여야 할까? ‘한 겨울 낮의 꿈'이었습니다. (모두 각자 자신의 ‘Home Coming Day’를 그려보세요. 그리고 골치아프면 그냥 지금처럼 다른 성씨들과 함께 섞여 투정부리지 말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명절 음식에 사랑의 양념을 듬뿍 넣으면 더욱 맛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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