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내 마음 다 팔았고나 2003년 12월 31일
작성자 김재흥
- 오늘 아침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으며 목사님 글모음란에 들어갔다가 본 시구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깊이 묵상할 내용 같습니다. 내 마음 다 팔았고나! 다 팔아먹었고나! 아버지가 집에서 나올 때 채곡채곡 넣어주시며 잃지 말고 닦아내어 님 보거든 드리라 일러주시던 그 마음 이 세상 길거리에서 다 팔아먹었고나! 다 팔아먹고, 다 헤쳐먹고, 이젠 껍데기만 남았고나. 님 생각이 나는 오늘엔 바쳐야 할 그 맘은 없고 세상 풍파에 부대끼고 더러운 기록을 그린 이 껍질 밖에 없으니 무엇으로 님을 만나? 무슨 맘에 님을 찾나? 속았구나? 세상한테 속았구나! 그 사탕에 맘 팔고, 그 옷에 맘 팔고, 고운 듯 꾀는 눈에 뜨거운 맘 다 팔고 피리 소리 좋은 듯해 있는 맘 툭 털어주고 샀더니 속았구나, 속 없는 세상한테 속았구나! 해는 서산 위에 뉘엿이 눕고 내 몸은 피곤하고 저녁 바람은 가벼이 불 때 다 팔고 남은 내 맘의 껍질은 물 마른 우물같이 텅 빈 쓸쓸함만 길었는데 님은 저 언덕을 올라가시네, 저녁 영광 안으시고. 저 님이 가시기 전, 저 님이 저 언덕을 아주 넘으시기 전, 가자, 내 맘아, 팔다가 남은 부스러기라도 모아 가지고 가서 바치자. 받으시거나 아니 받으시거나 발 앞에나 쓰러지자! 세상아 내 맘을 도로 주어! 이 껍데기 세상아 내가 날 속여 껍데기로 만들었지만 네게 줄 내 맘이 아니었더니라. 님께 바쳐야 할 내 맘을 도로 내놓아, 어서 내놓아! 내가 본시 네게서 받은 것이 없었노라. - 함석헌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