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숫자 불감증에 걸린 우리 시대 2003년 11월 06일
작성자 장혜숙
현재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아파트 가격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파트가격이 평당 1000만원일 경우 40평형이 4억원이다. 평당 500만원 정도인 곳도, 1000만원 2000만원이 넘는 곳도 많이 있지만, 수도 서울에 거주하는 보통 사람들의 감각에 ‘이 정도’라 생각하는 가격을 설정해 본 것이다. 봉급생활자의 연봉은 얼마로 설정하면 적당할까? 직장에 따라, 연령에 따라, 능력에 따라, 모든 상황에 따라 다 다르지만 편의상 연봉 4000만원을 가정해본다. (높은가… 낮은가…) 연봉 4000만원을 고스란히 10년을 모으면 40평형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이것은 마치 숫자에 대한 문맹처럼 단순히 한 가지 숫자밖에 모르는 사람의 계산이리라. 10년 세월동안 보유하고 있는 집의 가격도 상승하고, 수입도 오르고, 10년 후의 4억원이란 가격은 현재의 4억과는 전혀 다른 값어치일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단순한 계산이 맞다고는 할 수 없다. 현실을 들여다볼 때 현재 연봉 4000만원인 사람이 현시점에서 4억원 짜리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현재의 숫자만 생각하기로 한다. 어차피 연봉에서 단돈 1원도 빼지 않은 전체를 10년 동안이나 다 집값으로 저축해둔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집합적인 숫자란 어처구니 없는 계산을 불러올 때가 많다. 참 억울한 게 많고도 많은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생각해본다. 전 시대의 어느 대통령이 축재했다는 돈의 숫자를 생각해보자. 일년에 일억원씩 축재했다면 단군이래 지금까지의 세월이 필요한 돈이 아닌가. 단군이래 지금까지! 80년의 수명이라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년에 50억원씩을 축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고, 실감할 수도 없는 액수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숫자인데, 그래도 이러한 숫자가 존재함은 사실이다. 시장 바구니를 들고 나설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주부로서 생각해본다. 실감나는 숫자를 생각해볼까……. 2천만원의 정기예금 증서를 간간히 꺼내보며 가슴 뿌듯해 하는 가난하지 않은 사람을 생각해본다. 보너스를 축내지 않고, 알뜰살뜰 적금을 붓고, 그래서 현재까지 모은 돈이 2000만원이다. 결혼 20년차의 주부라 하자. 일년에 1백만원씩 20년을 모은 돈이다. 20년 살림의 결과 현금으로서의 전재산이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보통 사람들에게 실감이 나는 숫자가 될까? 끄덕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 ‘2000만원’이라는 숫자가 꿈만 같이 멀고도 아득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빨리 사회인이 되고싶기도 하고, 가능하면 학생에 머무르고 싶기도 한 대학생을 생각해본다. 연간 등록금 약 800만원. 용돈 월 20만원씩 연간 240만원. 의식주를 제외한 금액만해도 1000만원이 넘는다. 대학생이 두 명인 가정을 들여다보자. 가장의 연봉(위에서 설정한) 4000만원에서 50%가 넘는 숫자가 대학생 자녀 둘을 위해 지출된다. 나머지 절반으로 4식구의 기초생활비, 아직은 효 사상과 대가족제의 미덕이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의 최소한의 ‘사람구실’하기, 사회구성원으로서 왕따(?) 당하지 않을 정도의 참여하기….. 이런 곳에 두 사람의 대학생이 쓰는 비용과 같은 금액으로 버티며 그들의 부모가 아등바등 살아간다. 종교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숫자를 생각해본다. 개신교의 목회세습이 교계는 물론이고 사회문제까지 되더니 불교에서도 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돈과 연결된 종교계의 비리가 연일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 그냥 단순한 문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계획된 범죄행위까지 저질러지고 있다. 물론 종교 지도자들을 모두 다 이 같은 시선으로 보아선 안 된다. 한꺼번에 매도해선 안 된다. 다만 이 글의 주제인 <숫자>에 끌어다 부칠 수 있는 화제를 꺼냈을 뿐이다. 신자들은 어떻게 사는가? 보통 아침 7시~8시 사이에 집을 나서 저녁 그 시간에 귀가한다. 새벽밥을 먹거나 굶고 출근하여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속이 비어서 쓰린 시간에 귀가하여 저녁밥을 먹는다. 하루 종일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가는 접어 두기로 하자. 이런 신자들이 연봉 4000만원(맨 처음에 든 예에서)을 받아 온전히 십일조를(기독교의 경우) 헌금하면 연간 400만원을 헌금하게 된다.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는 연봉 4000만원의 신도가 100명일 때 헌금은 4억원, 평당 1000만원 짜리 40평 아파트 한 채 값이 된다. 그러나 이 계산은 또 얼마나 황당한가? 연봉 4000만원을 아무나 다 받는 것도 아니며, 십일조 헌금을 온전히 하느냐 아니냐를 논할 이유도 없고, 더구나 연간 400만원의 헌금을 할 수 있는 신도가 100명이라는 것도 그저 추측일 뿐이니 말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도대체 계산이 안 되는 지출을 하며 사는 것이다.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무슨 무슨 금액들은 까무라칠 지경이다. 자녀들은 돈 한 푼을 쓸 때도 그들의 부모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며, 경영자들은 그들의 고용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를 살펴야할 것이며, 고용자들은 제값을 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며,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공무원들은 정말 납세자들이 억울하지 않은지 물어야 할 것이며, 공공의 자금을 사용하는 모든 기관들에서는 그 기금이 모여진 경로에 감사함을 잊지 말하야할 것이고, 종교계의 예산집행자들은 신도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바친 헌금인지 신도들은 얼마나 힘겹게 살림을 꾸리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신도들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바치는 헌금이 아니라, 그들의 신에게 바치는 헌금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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