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집밥 2003년 10월 27일
작성자 장혜숙
직업, 나이, 신분에 관계없이 외식이 일반화되었다. 끼니 때 집을 떠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외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집 밖에서의 모임을 위해서, 가족끼리 기분전환으로, 의미 있는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특별히 외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식사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있는 가정주부도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고,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해도 될 시간인데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가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많다. 외식을 하면 별미를 먹는 재미도 있고, 주부들은 부엌일에서 해방되는 자유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집밥을 제일로 꼽는 까닭은 무엇일까? 밖으로 돌며 산해진미를 다 맛보는 가장도 집밥을 제일로 꼽고, 퓨전요리의 맛에 길들여진 자녀들도 집밥을 제일로 꼽고, 부엌일의 귀찮음을 감수해야하는 주부도 집밥을 제일로 꼽는다. 우리나라에 “엄마 손 맛”이라는 말이 있듯이 독일에 있을 때 식당에 가면 “할머니 조리법”으로 준비한 메뉴가 각 식당의 메뉴판에 꼭 끼어있고, 런던에서도 “집의 조리법” 메뉴를 보았다. 주로 소스나 스프에 그런 말이 붙어있다. 식도락을 즐기는 미식가들에게도 “집밥”은 모든 음식의 근본이고, 산해진미 식탁 앞에서도 불현듯 그리워지는 것이 바로 “집밥”이다. 어머니의 요리솜씨가, 아내의 요리솜씨가 남보다 못하여도 집의 밥은 언제나 그리움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 많은 주부들이 집밥의 중요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물론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은 다 달라서 누구의 방법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숙식을 집에서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활 방식이다. 모든 어머니들은 젖의 성분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것이 생명줄인 것을 알고 젖을 물린다. 본능이다. 초유를 먹는 신생아들도 본능으로 젖을 빤다. 식구들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주부들에게(꼭 여자여야 할 이유는 없다. 남편이나 아들이면 또 어떠랴)도 젖을 물리는 어미의 동물적인 본능이 있다. 생물학이나 영양학에 전혀 무식한 주부도 식구들의 뼈와 근육과 살이 되는 먹거리를 분별하며 준비하는 정성스런 마음이 있으니 말이다. 주부가 식구들의 식사준비를 소홀히 하고, 식구들이 준비된 집밥을 마다하고 외식을 일삼는다면, 이런 상태가 장기간 계속된다면, “식구로 묶인” 가족 관계에 작은 틈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사람이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 말을 들어서 물리적인 답을 하자면 사람은 밥으로 산다. 그런데 그냥 밥이 아니라 <집밥>이다. 우리 식구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 집 밥으로 산다. 왜? 집밥은 단순한 육의 양식이 아니라, 사랑이 담겨있는 영육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상품화된 육의 양식이 아니라, 힘의 원천인 사랑이 거기 듬뿍 들어있는 영의 양식이기도 하다. 이렇게 집밥은 소중하다. 한 밤중에 들어와도 집에 와서 밥 먹으려고 밥을 안 먹고 왔다는 남편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빵을 먹어도 집의 식탁 앞에 앉아 내가 끓인 차를 마시며 빵을 먹는 자식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나의 이러한 작은 행복이 ‘여성으로서의 고정된 역할에 대한 하찮은 행복’으로 비칠지라도, 집밥을 기본으로 삼고 늘 집밥을 그리워하는 식구들에게 집밥을 마련하는 시간이 내게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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