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나는 특별하다??? 2003년 10월 20일
작성자 장혜숙
병원에 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만원. 접수 창구에서 진료예약을 하려는 사람들의 심각한 표정들을 보게된다. 원하는 날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지정해주는 날짜는 두 세 달 후에나 진찰이 가능하다는 답을 듣는 환자들의 표정이 밝을 리 없다. 각자 개인의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굳이 특진 의사의 진찰을 받지 않아도 되는 환자 한 명이 일반진료로 물러나면 꼭 필요한 위급한 환자 한 명이 특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벌써 4년 째, 퇴행성 질환으로 똑같은 약처방을 받아오는 어머니, 의사와 면담은 단 5분 정도 뿐이다. 녹음기 튼 것처럼 같은 질문과 답변이다. 요즘 어떠세요? 그냥 그래요. 할머니 나이드셔서 그래요. 그럼 안 낫나요? 더 아프지 않으시면 다행이지요. 그 분야에선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특진의사, 그에게서 오늘도 4년전과 똑같은 문진과 답을 주고받은 후 역시 똑같은 약처방을 받았다. 몇 달전에 예약할 때부터 굳이 그 의사에게 하지 않아도 이미 그 의사가 한 처방으로 똑같이 다른 의사가 해준다고 설명을 드렸으나 어머니는 화를 내신다. 그 의사가 제일 잘 본다고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제일 용하단다. 나는 불효자인가? 어머님을 최고의 의사에게 모시는 것을 막으려는 못된 딸인가?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노환보다 더 위급한 환자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노환을 소홀히 여겨서도 아니다. 다만, 다른 일반 의사가 대신할 수 있는 환자가 꼭 그 특진의사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어서, 정말 특진 의사의 진료가 필요한 위급하고 위독한 한 사람이 애타게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자꾸만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특진의사가 어머님께 멀리 다니시기 힘든데 굳이 여기 오시지 말고 동네 가까운 곳에 가셔서 약 처방받으시라고 말을 한 것이다. 약처방은 변함없이 같이 하도록 서류를 만들어 줄테니 어느 병원을 가셔도 다 마찬가지라고 설명하며 어머니를 설득시킨 것이다. 그 의사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자기를 절실히 필요로하고 있는 위급한 환자들에게 시간을 내주고싶은 마음이었을게다. 의사가 그렇게 설명을 하니 어머니도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 그 일이 어머니에겐 큰 쇼크였나보다. 정형외과 진료를 마치고 곧바로 이어진 가정의학과 진료에서 그만 혈압이 엄청 올라간 것이다. 병원에 가실 때만해도 기분이 좋으셨었는데..... 병원에 가면 이런 부류의 환자들이 참 많다. 유명의사, 일류의사, 최고의 의사에게만 진료받기를 고집하는 일종의 "일류병" 환자들이 정말 많다. 육안으로 다 판정할 순 없지만, 병원출입을 오래 하다보면 대충 그런 일류병 환자들을 감으로 식별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사용하는 물품을 최고로 고집하는 것과는 또 다르지 않는가. 나는 남과 다르다, 나는 특별하다, 나는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한다는 의식을 병원진료에서까지 고집한다면 그들의 일류병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서 기다리는 환자들의 신음소리는 어쩔 것인가? 오늘도 나는 예약을 하지 못해서 낙심하는 환자들의 신음소리 때문에 양보해도 될 형편이면서도 먼저 차지한 진료시간이 마냥 미안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나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 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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