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아들을 훈련소에 보내고... 2003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마치 좋은 곳에 드라이브하러 가듯, 호수를 끼고 경춘가도를 달려 청평을 지나, 수목원 아침고요를 지나, 그렇게 가다가 현리에 있는 맹호부대 훈련소에 갔지요.
오후 1시에 입소하는 것이라 12시 반쯤에 바로 문앞에서 서성이며 들어가지 않고 아쉬움을 나누고 있는데, 정문에 있는 사병이 갑자기 큰소리로 빨리 들어가라고 외치는 거에요. 늦게 들어가면 자기 몸에 맞는 옷 받아입기가 어렵다고.
그 소리듣고 그냥 곧바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좀 안스러워 보이더군요.
아들과 나는 새벽기도 시간에 계속 만나고 있으리라고 맹세하며 헤어졌답니다.
나는 아들이 새벽에 기도하는 이 엄마를 기억하고 힘을 얻기보다는,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기를 더 바라고 있습니다. 그 애가 직접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3년의 훈련이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니까요.

어머님은 벌써 며칠전부처 애간장을 태우셨지요.
나는 그런 어머니를 위로하느라고 다른 집 아들들도 다 천하에 제일 귀한 자식이고, 우리 애 만큼 안 귀한 자식이 하나도 없이 모두다 귀한 자식들이라고 했었고요.
휴전상태인 이 땅에 태어난 사내아이로서 겪어야하는 통과의례이니 잘 마치고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욕실에서 손을 씻으며 그 아이가 쓰던 쉐이빙 폼, 아프터 쉐이브, 데오도랑, 장 폴 고띠에 향수병을 하나씩 어루만지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뜨뜻한 물로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나간 아들을 벌써부터 그리워합니다. 헤어진지 겨우 세 시간도 안됐는데....
그 아이가 한 동안은 그런 목욕의 여유를 즐길 수 없겟지요.
어쩌면 향수까지 챙겨서 사용하던 그 아이는 이 어려운 사회에서 쁘띠 브루주아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드는군요.
거친 음식을 먹고, 힘겨운 육체적 훈련을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대접받지 못하며, 썰렁하니 급하게 몸을 씻고, 딱딱한 잠자리에서 하루를 마감할 때, 이 땅의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한껏 키워가지고 나오는 훈련기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아이가 엄마를 위로한 말은, 그동안 여러 환경변화를 겪으며 지나왔기 때문에 저는 어떤 환경 속에 내동댕이쳐놔도 다 견디고 지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말이 가슴 속에서 가만히 되살아납니다. 그동안 정말 낯선 환경 속에 홀로 던져지며 겪었던 시절이 고달프기도 했었겠구나............
낯 선 나라, 낯 선 사람들, 낯 선 생활 속에서 마치 전투하듯 긴장상태로 이어진 그 아이의 지난 날들이었으니까요.

아들은 이제 그동안 해오던 수업 활동의 한 부분처럼 또 다른 활동학습을 하러 간 거라고 생각하며 지내렵니다.
고등학교 때 여러가지의 특별활동이 있었지요.
지도읽기 교육시간에 벌판에서 헤매던 날 지독한 독감에 걸리기도 했었고, 며칠 째 계속 세찬 비와 우박이 퍼붓는 악천후 속에서 제 몸무게만큼 나가는 배낭 메고 지도와 나침반으로 길을 찾으며 오스트리아 산 속을 헤매던 트레킹,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사태까지 생기는데도 강행한 터키에서의 일주일간 카누훈련, 비록 인공암벽이긴 하지만 매주 계속되던 암벽등반 훈련. 마운틴 바이킹. 그 모든 활동에서 한 번도 낙오하지 않고 버틴 아들을 믿고 이번 군사훈련도 무사히 마치리라고 마음을 달랩니다.

아들이 벗어놓은 잠옷에 아직 체온이 남아있는데 벌써부터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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