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축구선수와 청소부 2003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연 이틀 째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이른 새벽부터 청소부는 비옷을 입고 빗자루로 거리를 쓸고 있다. 빗물이 흘러들어가는 하수구 근처의 쓰레기들을 긁어모으는데 담배 꽁초에서부터 비닐 조각, 종이 조각.... 젖은 쓰레기들이 땅바닥에 붙어서 잘 쓸리지 않는다. 청소부는 규칙적인 빗자루질을 계속하고 있다.

어제는 아르헨티나와 우리나라의 축구경기가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에서, 버스 속에서 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축구경기 걱정을 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어머니도 선수들 비맞고 뛰는게 딱하다고 걱정하신다. 나도 좀 걱정을 하긴 했었다. 빗속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많이 고생을 할까......
그러나 그 이야기가 오늘까지 이어지는 데는 발끈 화가 치민다.

축구선수들.
다른 종목의 선수들이나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 수도 있지만 지금은 축구선수들만 생각해본다.
연봉을 수억원 또는 수십억원 씩 받는 그들이 두 시간 정도 빗속에서 뛰어다닌다고 뭐 그리 안타까와서 걱정일까. 그 연봉에 그만큼의 값은 해도 되지 않을까.....
월 100만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청소부가 남들 단잠이 깨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비를 맞으며 거리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모습에는 무감각하면서, 그 청소부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도의 값을 받는 축구선수들이 한 두시간쯤 비를 맞는 것에는 가슴이 타다니.........

물론 축구선수와 청소부의 몸값은 당연히 다르다.
그 수입을 올리기까지 투자한 정신적 육체적 노력이 서로 다르고, 또한 투자한 경제적 비용도 다르다. 그들이 하는 일이 타인에게 주는 영향도 다르다.
월드 컵 때의 축구선수는 지금까지 어떤 정치가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국민을 한 덩어리로 화합,단결시켰고, 애국심에 불타오르게 하였으며,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한 혈관이 불끈불끈 일어나는 힘을 국민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온 국민에게 신바람나게 했다. 온 국민을 살 맛나게 해주었다. 그런 축구선수를 사랑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사랑하게 된 축구선수가 빗 속에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부가 하수도 구멍을 메우는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물난리가 나서 우리는 한 순간에 수재민이 되고만다.
청소부가 축구장에 널려진 종이나 비닐 조각을 줏어내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축구선수가 그만 쫄뜨락 미끌어지고 만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묵묵히 쓰레질을 하는 청소부도, 빗속에 전력투구하는 축구선수 못지않게 안스럽게 보인다.
청소부가 쓸어모아놓은 쓰레기들을 보며 마치 내가 다 버린 것같아 청소부를 보기가 민망하였다. 그가 있어서 그나마 우리는 지금 요만큼이라도 쾌적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축구선수도 사랑하고 청소부도 사랑하고 모두다 사랑한다.
축구선수가 비맞고 뛰면 안스럽고, 청소부가 비맞으며 청소하면 역시 안타깝다.
축수선수나 청소부나 모두 똑같이 내게 살맛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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