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진노하시는 하나님. 2003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시작하지 말았어야할 전쟁은 오늘도 우리를 심란하게 합니다.
거리에서는 반전 시위가 벌어지고, 버스를 타고 지나는 미군부대 앞엔 마치 여기가 전장인 듯 전경이 겹겹이 둘러서 있습니다. TV화면은 반전 시위대도 보여주고, 전투중인 군인들도 보여줍니다. 아, 불쌍한 사람들. 답답한 마음보다는 불쌍한 마음이 더 큽니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하고있었는지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전쟁을 일으킨 미국-나쁜 놈들, 처참하게 당하는 이라크-안됐구나, 이런 생각에 머물러 있었지요. 언제나 그렇듯이 약자에 대한 동정심,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이었지요. 깡패 같은 미국(미국놈들)이 미웠지요. 폭격에 피 흘리는 이라크인의 참상에 눈길이 머물고 마음도 쓰이고 그랬었지요. 그러나 묵상을 하는 중에 그건 나의 잘못이었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라크 병사 한 사람의 목숨과 미국병사 한 사람의 목숨은 다 똑같이 귀하다는 생각이 번쩍 났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에 어찌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 미국인과 이라크인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귀한 생명입니다. 다만 <미국>이라는 조직이 미울 뿐, 그 조직이 범죄하고 밉다해도 미국인들의 한 생명도 이라크인들의 한 생명과 똑같이 소중합니다.
담임 목사님이 쓰신 <새로 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우리’아버지시다,
예수님은 우리 아버지라는 말을 가지고
기도를 순전히 사적인 목적으로 드리려는
유혹을 차단하신다.
인정하기 싫지만,
하나님은 나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
나와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
내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아버지시기도 하다.--

물론 이 글은 미국의 아버지 하나님, 이라크의 아버지 하나님을 염두에 둔 글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에게는 미국 병사의 생명도 이라크 병사의 생명도 다 소중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니까, ‘우리’의 하나님.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달래는데도 그래도 미국이 밉습니다. 9.11 테러에서 희생당한 사람의 숫자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했고, 세상에서 살상무기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국이 다시 세계 평화(?)와 정의(?)의 이름으로 이라크를 다스리려고 하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용서가 안됩니다. 용서가 안돼요.

독일에 있을 때 집 가까이에 무인으로 운영하는 딸기밭이 있었습니다. 지키는 사람이 없고 저울과 바구니만 있지요. 누구나 들어가서 딸기를 직접 따고 저울에 담아 해당되는 값을 바구니에 넣어두면 끝입니다. 그 장소에 이런 말이 써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그런데 어떤 장난꾸러기(어른인지 아이인지)가 바로 그 아래에 이런 말을 썼더군요. “하나님은 다 용서하신다.” 우린 딸기밭 앞을 지나며 정말 유쾌하게 웃었답니다.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납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미국 대통령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너그럽게 용서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무섭게 진노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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