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박 은영님의 글(kll.co.kr)-엄마에게도 삶이 있다.- 2003년 01월 01일
작성자 정숙
이 땅의 여성들에겐 참으로 많은 삶의 의무가 주어진다. 어머니의 의무, 아내의 의무, 며느리의 의무 등. 그 중에서도 오늘 나는 어머니의 의무, 그 중에서도 육아의 의무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내가 즐겨 읽는 '뉴욕이야기'를 쓰는 김순덕 기자는, 요즘 같이 미국에 간 딸애를 다시 한국에 보내고 편안한 날을 지내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미국 사회에 적응을 못해서 결국은 다시 한국으로 보낸 것인데 '아이 없이 살수 있을까' 라는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요즘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편할줄 알았으면 진작 보낼걸 그랬다는 생각이다. 우선 챙겨 먹일 사람이 없으니까 가사노동에 시간과 정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밤마다 딸아이 수학교과서와 숙제를 번역해주느라 애썼던 시간도 고스란히 나만을 위해 쓸 수가 있다.

특히 새벽같이 학교에 나와 아무도 없는 연구실 문을 열 때, 열띤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충만해진 기분으로 깜깜한 캠퍼스를 걸어나올 때, 딸의 동의를 구하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훌쩍 맨해튼 가서 감동적인 공연을 보고 올 때면, “아, 좋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송곳 하나가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황급히 혀를 깨물곤 한다. 나는 나쁜 엄마다…."

나도 예전에 그랬다. 아이가 방학 동안 시댁에 가서 잠시 있을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바쳤던 시간을 고스란히 나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그 생각만으로 즐겁고 설레고 그랬다. 그러다 문득 '혹시 내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우리 사회에는 능력은 있지만, 육아의 의무 때문에 자신의 일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많다. 오랜 세월동안 고급 인력으로 교육받은 여성들이 집에서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솔직히 안타깝다. 전업주부의 일이 하찮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사장시킨다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어머니의 신성한 의무를 강요당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삶보다는 자식을 돌보는 것에 헌신적이어야 하고, 자신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그 강요된 의무를 거부하는 데는 너무 많은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일을 포기한 채 묵묵히 그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며 살아간다.

최근 몇 달간 미국 사회는 정신질환에 걸려 자신의 다섯 아이를 욕조에 넣어 죽인 '안드리아 예이츠' 사건으로 인해 떠들썩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자녀들을 학교에도 안 보내고 홈스쿨링 시킬 만큼 특별한 자녀관을 지닌 사람이었고, 안드리아는 늘 자신이 좋은 엄마가 못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안드리아가 일을 저지르기까지는 아무도 남의 집안문제에 관심 갖지 않았다. 왜? 모성은 신성하다는 ‘신화’가 시퍼렇게 존재하니까.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따라 여성의 이미지가 이브에서 성모 마리아로 바뀐 것이 18세기부터였다. 따라서 엄마가, 특히 돈도 못 버는 엄마가 아이들을 잘 돌봐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엄마자신의 꿈과 삶이란 아이들 똥 기저귀만도 못하다." 이 글은 김순덕 기자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다.

결국 안드리아는 죄책감을 벗어나지 못해 정신병을 앓게 되었고,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과연 지금 이 시대에도 육아의 의무는 어머니만의 의무일까?
나는 육아의 의무는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다른 사람이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은 탁아소 같은 데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어머니가 돌보는 것보다는 조금 미흡할지 모르지만, 아이가 자라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독립심을 키우는 데는 더 좋은 측면도 있을 것이다.
내 친구 중엔 지금도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의 자녀들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꼭 엄마가 키워야만 아이가 제대로 잘 자란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자신의 일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이를 다른 사람이 돌본다고 해서 죄의식 같은 것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신 여성이 늘고,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걱정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지나치게 육아의 의무를 강요하지 않았음 좋겠다. 인간의 기본욕구 중엔 성취의 욕구가 있고, 어머니에게도 성취의 욕구는 있다. 아울러 어머니도 자신의 삶을 살 권리가 있음을 우리 사회가 인정했음 좋겠다.

아이를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좋은 탁아소가 이 땅에 더 많이 생기고 사회의 인식이 달라져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성들이 이 땅에 더 많았음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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