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여열 2003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압력솥에 밥을 지었습니다.
끓기 시작하여 2분 후에 불을 끕니다. 불을 끈 후에도 솥의 뜨거운 열기로 얼마간 더 끓다가 뜸까지 들여집니다.
전기 프라이팬에 전을 지집니다. 마지막 재료를 프라이팬에 펼쳐놓고 전원을 끕니다. 그래도 훌륭하게 노릇노릇 지져집니다.
다리미질을 합니다. 코드를 뽑은 후에 손수건 대여섯 장을 그냥 다립니다. 그래도 남은 열이 아까워 안 다려도 그만인 앞치마까지 문질러봅니다.

어젠 수요일, 기도의 밤이었지요.
감사하고 속죄하고 구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어제 기도할 때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곤 하더군요.
압력솥에 밥이 끓기 시작하자 불을 끄면서 갑자기 아!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뜨거운 열이 남아있어 불을 끈 후에도 뜸이 드는구나!
바로 그겁니다. 교회에 가는 이유가.
교회에 다녀온 후에는 교회에서 가졌던 감정들이 교회에서 돌아온 후로도 한참동안 남아있습니다. 그 열기가 식을 때쯤엔 다시 교회에 가는 날이 됩니다. 물론 건물로서의 교회만 뜻하는 것은 아니지요. 건물도 포함된 교회의 모든 의미를 다 뜻합니다.

꿈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잠깐 다녀간 막내 아들이 남기고 간 말 한마디가 자주 생각났었는데, 이젠 그 애에게 오늘 느낀 <교회에 가야하는 이유>를 메일로 보내야겟습니다.
그애가 남기고 간 말은 목사님의 설교말씀 중에 예로 들었던 활활타는 모닥불에서 혼자 떨어져나온 장작개비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엄마, 혼자서는 타오르지 못하고 꺼져버린다면, 무더기 속에서 다른 것에 의지해 계속 타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은 아들에게 답을 보냅니다.
"아들아, 교회에 갔다오면 교회에서 느꼈던 뜨거움이 얼마간 더 남아있는 것이 엄마는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런데 불을 끄면 <얼마간>일 뿐, 결국은 싸늘해지니까, 엄마는 자꾸만 교회에 간다."
너무 부족한 답이죠......

사족.
아이들 다 독립시키고도 외로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려고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는데, 짧은 글을 써놓고 다시 읽으며 제 자신도 깜짝 놀랐답니다. 아들이 함께 있다간 그 기간이 2주일이 넘는데............ 꿈처럼 바람처럼 다녀갔다고 썼네요. 자제할 수 없는 어미의 본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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