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제주 답사기 - 1 2003년 01월 01일
작성자 박범희
제주도는 똥이다.

내가 하는 수업은 중구난방이라
이야기가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정신없을 때가 많다.
하여 우연히 제주도 이야기가 나오면
주로 현기영 선생의 소설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순이 삼촌>이나 <바람타는 섬>이 대표적이다.
<바람타는 섬>은 1930년대 초반 잠녀(해녀)투쟁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것이 소설책으로 묶여나오기 전, <한겨레 신문>에 연재될 때
읽었는데,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신간회 회원인 선생님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민족 의식을
심어주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칠판에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면서 질문을 한다.

선생님 : 이 지도가 무엇과 비슷한가요?
아이들 : (이구동성으로) 토끼요.
선생님 : 아니란다. 우리나라는 토끼가 아니라 호랑이란다. 그것도
만주를 향하여 포효하는 호랑이말이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이전에 그렸던 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만주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를 그린다. 이 때 한 아이가 질문을 한다.

아이 1 : 선생님, 그러면 우리 제주도는 뭡니까?

그러자 다른 아이가 조그마한 혼자 소리로 대답한다.

아이 2 : 똥이지 뭐!

아이들은 와아 하며 웃으며 떠들며 난리다.
어떤 선생이든 전혀 의도하지 않은 학생들의 반응에 곤란을 겪는
경우는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 애들아, 제주도는 똥이 아니란다. 이 호랑이가 만주를 향해
뛰어오를 수 있는 발판이란다. 그리고 그 발판이 되어야 한다.

지금도 나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축축해질 때가
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수업을 하지.
이 얼마나 훌륭한 대답인가? 결국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독립운동의 길로 나선다.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난다면 그 선생님은
참 대단한 선생님이고, 박범희가 이야기를 하면서 제 설움에 겨워
눈시울이 축축해질 만도 하다.

하지만 그 악독한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난 지 몇년 되지도 않아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빨갱이란 누명을 쓰고 다 죽어가는
그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제주도는 똥"이라고.

과연 제주도가 한반도 중앙정부의 영향권 내로 편입된 이후
제대로 대접받은 적이 있었던가?

현기영 선생이 <해룡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천형의 땅'이 바로
제주가 아니었던가?

"육지 중앙정부가 돌보지 않던 머나먼 벽지, 귀양을 떠난 적객(謫客)들이 수륙 이천리를 가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던 유배지, 목민(牧民)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국마를 살찌우는 목마(牧馬)에만 신경 썼던 역대 육지 목사들, 가뭄이 들어 목장의 초지가 마르면 지체없이 말을 보리밭으로 몰아 백성의 일년 양식을 먹어치우게 하던 마정. 백성을 위한 행정은 없고 말을 위한 행정만 있던 천더기의 땅, 저주받은 땅, 천형의 땅......"
현기영의 {순의 삼촌} 135쪽 [해룡이야기] 중에서

그래서 민란이 일어날때마다 끊임없이 제주만의 세상을 만들자는
논의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최소한 1948년 10월에서 1949년 4월에 이르기까지, 단지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죽어가야했던 많은 사람들-
약 3만 가량으로 잡고 있음- 그들의 원통한 죽음을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기 전(前)까지는
"제주도는 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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