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워밍업 제주 답사 2003년 01월 01일
작성자 박범희
답사를 주관하는 이영권 선생님이 역사교사모임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답사 안내라고 할 수 있지요.

꽤 재미있습니다.
구석구석 재주꾼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워밍업 제주답사

변방의 시선으로 한국사를 유쾌하게 뒤집자

이영권(제주공고 역사교사)


행복하도다, 제주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이여!

제주도에 처음 오시는 선생님, 손들어 볼래요? 없죠?
대학 때 졸업여행, 아니면 신혼여행, 그도 아니면 학생들 데리고 온 수학여행일지라도 한번쯤은 제주도에 와 보셨을 겁니다. 어땠나요?
좋았다고요?
아니 외교적 발언 말고, 진짜로 말해 보세요. 솔직히 별로였죠? 공기 좋고 경관 또한 이국적인게 매력은 있긴 한데, 두어 번 와 보니까 이젠 식상하고, 게다가 물건 값 바가지는 왜 이리도 심한지.......

그렇습니다. 천혜의 자연경관 하나로 일찍부터 국내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자리잡긴 했는데 이젠 아니죠. 소위 유명 관광지 따라 뺑뺑이를 돌다가 이내 숙소로 내던져지다 보면 비싼 돈들이고 괜히 제주도에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겁니다.
물론 최근엔 돌베개에서 낸 {답사여행의 길잡이} 등의 좋은 책이 있어 슬기롭게 제주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은 이지누라는 양반이 진행하는 한겨레 투어의 제주기행도 새로운 맛을 던져주긴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반 관광상품 이상의 제주기행을 맛보긴 쉽지 않습니다. 좋은 책이 있어도 실제 그 책 하나로 현장을 찾아가긴 힘들어요. 그리고 한겨레 투어의 기행도 제가 보기엔 수박 겉 핥기 수준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국역사교사모임 겨울 자주연수에 참가한 여러 선생님들은 행복합니다. 제주섬의 진면목을 쬐끔이나마 맛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형의 땅

"육지 중앙정부가 돌보지 않던 머나먼 벽지, 귀양을 떠난 적객(謫客)들이 수륙 이천리를 가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던 유배지, 목민(牧民)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국마를 살찌우는 목마(牧馬)에만 신경 썼던 역대 육지 목사들, 가뭄이 들어 목장의 초지가 마르면 지체없이 말을 보리밭으로 몰아 백성의 일년 양식을 먹어치우게 하던 마정. 백성을 위한 행정은 없고 말을 위한 행정만 있던 천더기의 땅, 저주받은 땅, 천형의 땅......"
현기영의 {순의 삼촌} 135쪽 [해룡이야기] 중에서


조선시대 제주도를 가장 실감나게 묘사한 구절입니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선 말(馬)이나 전복 등 특산물을 징수하는 지역으로서의 가치에만 주목할 뿐 별다른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 버려진 땅입니다.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정치적 관심에 있어서도 말 그대로 변방이었던 것이죠.

이건 오늘날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긴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인 까닭에 변두리 섬에 중요성을 둘 까닭은 없죠. 인구 비율로 볼 때도 고작 남한 인구의 1.2%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선거에서 머릿수를 가장 중시하는 정치인들이 제주섬을 주목할 린 없는 거죠.

물론 조선시대보다야 많이 나아졌죠. 하지만 사실은 한국 내부의 '오리엔탈리즘' 비슷한 시선이 남아있는 건 사실입니다. 마치 서양인들이 동양을 바라보며 우월감을 견지한 채 동양의 신비주의를 야릇하게 감상하고 동경하는, 그런 감정들 말입니다.
서울 등 육지에 사는 사람들이 우선 제주에 오면 아름다운 풍광과 이국적인 분위기, 뭐 이런 것들에 대해 일단은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제주섬을 만만하게 여기는 무의식적 행동들을 하기 일수입니다. 작다는 것이지요. 정치적 거물이나 알만한 재벌하나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부정하고 싶을 진 모르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의식 저변엔 이런 게 깔려 있습니다. 예년보다 인상된 연수비용과 교통비를 감수하면서도 제주연수에 참가하겠다는 신청자가 넘쳤던 것도 혹 이런 '오리엔탈리즘'은 아니었는지요?

자격지심이라고요? 그 동안 극심한 지역차별을 감수해왔던 호남에 비하면 별 게 아니라고요?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호남만 해도 마한이니 백제니 하면서 대항 담론들을 얼마든지 내놓고 있잖아요. 그리고 지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만 해도, 기본적인 세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세(勢)가 약한 제주도는 아예 지역차별이라는 말조차 없습니다. 급이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실제 자주연수에 참가하면서 겪었던 저의 경험만 해도 그렇습니다. 조 편성을 하다보면 저는 너무도 쉽게 전남 소속으로 편입됩니다. 조선시대까지 제주도는 전라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가벼운 농담과 함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변방 제주는 이렇듯 천형의 땅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천형의 땅에 선생님들은 왜 오셨수? 진짜 한 수 배우러, 아님 은근히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즐기러?


사람 사는 땅엔 어디에나 역사가 있고, 모든 역사는 소중하다

하지만 사람 사는 땅엔 어디에나 역사가 있고, 또 모든 역사는 그 자체 그대로 소중합니다. 문명과 미개의 구분이 제국주의 학자들의 오만한 잣대가 만든 것이라는 지적이 있듯이 문화 상대주의는 중요합니다. 중앙은 중앙대로, 변방은 변방대로 모두 그 자체의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어쩌면 살아있는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살피려면 중앙 중심적 역사관에서 벗어날 때 가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문화 상대주의 보다 우리문화 제일주의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나는 내 고향 제주도를 무척 사랑하거든요. 그런 나인지라 여러 선생님들께 제주도를 마구 자랑하고 싶어요. 그리고 실제 그렇게 자랑할 게 많긴 합니다. 도세(道勢)가 약하다느니 하는 건 어쩌면 엄살일 수도 있어요.

실제 이곳 제주에서 저보다 애향심이 강한 향토사학자들은 제주의 역사가 가장 훌륭한 역사라고 자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이 바로 북제주군 고산리에 있다는 사실 아시죠? 왜 개정된 새 교과서에는 사진까지 실려 있잖아요.
독립국 탐라가 고려시대까지 존재했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탐라, 이렇게 '5국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향토사가들도 있어요. 제주도는 이처럼 다른 어느 지역보다 오랫동안 독자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조선후기에 일어난 민란에서는 '별국(別國) 건설' 즉 독립국 건설을 기치로 내건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 제주사회에는 지금도 이런 기조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흔히 '분리주의적 시각'이라고 하지요.

또 조선시대 제주가 전라도 소속이었다는 점도 깊이 있게 봐야 합니다. 사실은 이건 명목상의 편제에 불과합니다. 실제 행정은 제주도 독자성이 강하게 드러나요. 조선시대 제주목사는 모두 행(行)목사였던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목사는 보통 당하관이 파견되는 게 일반 원칙인데 제주에는 당상관이 옵니다. 제주목뿐만 아니라 전라감사의 직을 위임받아 제주도 전역을 관할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단순히 제주도를 전라도 소속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식한 짓입니다.

현대사에 와서도 제주도 역사는 자랑할 게 많습니다. 한국현대사 연구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는 한반도 전 지역 중 진보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 제주도라고 나와 있습니다. 역시 그의 책에는 당시 인구 당 학교수가 가장 많아 교육열이 최고 높았던 곳도 제주도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4.3은 또 어떻습니까? 매국적 단선 단정을 반대해 전도민이 궐기를 일으킨 곳도 바로 제주도였죠. 시대의 과제를 회피하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이런 자랑을 하려니 왠지 쑥스럽습니다. 사람 사는 어느 땅인들 자랑할 게 없는 곳이 있겠습니까? 한 때는 저도 역사교육이 애국심, 애향심 고취의 수단이길 바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를 위해선 적당히 미화하는 건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철이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냥 그 땅에서 선조들의 흘린 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그것이 진짜 역사 공부라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변방의 시선으로 중앙을 바라보자
이번 연수에서는 5가지 테마가 동원됩니다. 먼저 공통 테마는 제주4.3입니다. 우리 삶과 직결된 현대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른 시대의 역사보다 많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바른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물론 최근 높아지고 있는 대등한 한미관계 요구와도 무관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여기서는 주로 초토화작전의 배경과 그 실상, 그리고 4.3이 현재 제주사람들에게 남긴 흔적 등을 중심으로 찾아갑니다. 4.3은 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결코 변방에만 머무를 수 없는 사건입니다. 또 중앙 중심적 역사관으로만 보아서도 정확한 인식이 어려운 사건입니다. 4.3 기행을 마치고 나면 변방의 시선으로 중앙의 역사를 봐야 총체적 시각이 갖춰질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선택 답사 중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몰렸던 테마는 '제주의 유배문화'입니다. 아마 중앙과 연결된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변방의 시선으로 보면 내용은 많이 달라집니다. 물론 강사 선생님의 시선은 중앙의 시선에 한정될 수도 있습니다. 주로 이곳에 온 유배인들이 제주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에 국한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선생님들 스스로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입니다. 물론 선진문화의 영향력이 더 크긴 하겠지요. 그러나 선진, 후진이라는 구분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이라면 그들 역시 제주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향만을 끼치진 않았을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그 유명한 추사체가 완성된 곳은 제주도입니다. 문학적 표현으로 '제주의 칼바람'이 추사의 오만함을 꺾어 주었고, 그 꺾인 오만함이 겸손함으로 변하면서 그의 글씨에 불필요한 기름기가 빠진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결국 유배지 제주가 추사체를 완성시켜준 셈이죠.

추사 이외에도 굵직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광해군은 이곳에서 유배생활 중에 사망했습니다. 서인 노론의 영수 송시열도 거쳐갔고, 면암 최익현, 김윤식, 박영효, 이승훈 등 국사 교과서에서 익은 이름들이 다수 등장할 겁니다. 그들이 제주에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보는 일, 재미있겠지요.

다음으로 신청자가 많았던 건 '신당기행'입니다. 이 테마를 택한 사람들은 뭔가를 좀 아는 사람들입니다. 한국문화의 본질은 샤머니즘이다 라는 주장이 있던데, 그 흔적이 여전히 강하게 남은 곳이 이곳 제주도입니다.

요즘엔 정치사보다 생활사, 미시사 등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실제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고싶다는 욕구들이지요. 그렇다면 바로 제주 사람들의 신앙세계를 여행하는 신당기행은 분명 고급스런 체험이 될 것입니다. 제주문화의 원형은 무속입니다. 그리고 그 무속의 중심엔 여신(女神)이 있습니다. 이걸 잘 들여다보면 제주사람들의 깊은 의식세계까지 따라가게 될 겁니다.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들은 끊임없이 무속을 탄압하며 유교적 교화(?)를 획책합니다. 숙종 28년(1702년)에 와서 여러 신당을 불사른 이형상이라는 목사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지만 그가 서울로 돌아가자 파괴되었던 신당은 그대로 복구됩니다.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도 미신 타파를 외쳤건만 그 기간엔 오히려 신당이 더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물론 음성적으로 늘어난 것이죠.

유교을 이겨낸 무속, 남성 가부장을 비웃어버린 제주 여성의 생활력,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을 조롱해버린 제주의 민중들, 신당기행을 하다보면 중앙 권위적 유교가 유쾌하게 뒤집어지며 변방 사람들, 그 중에서도 소외된 여성들이 어쩌면 제주역사의 주체였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변방의 시선'으로 중앙을 바라보는 건 선생님들의 한국사 인식의 지평을 확실히 넓혀줄 겁니다.

삼별초 항쟁을 제주 사람의 시각으로 보는 것도 중앙 중심적 역사관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해내는 작업입니다. 국가주의적 가치관으로 본다면 분면 삼별초는 영웅적 항쟁입니다.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온 것부터가 재앙이었습니다. 제주사람들에겐 고려도 몽골도 모두 똑같은 외세에 불과했던 것이죠.

그것만이 아닙니다. 삼별초 패배 뒤엔 100년에 걸친 몽골의 제주지배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가 섞이는 건 당연합니다. 뿐만 아니라 몽골의 선진 목마 기술이 도입된 건 제주사람들에게 어쩌면 축복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 비유하면 현대자동차 공장이 제주에 들어온 것이죠. 그에 따른 경제 효과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1374년 소위 '목호의 난(牧胡의 亂)'은 그런 점에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사건입니다. 전통적 해석은 최영 장군이 이 난을 진압함으로 해서 드디어 제주를 몽골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되찾아 올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해석을 달리합니다. 목호의 난 토벌이야말로 4.3 이전에 발생한 최대의 제주도민 학살 사건으로 조명됩니다. 목호의 대다수는 실제 제주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석할 경우 중앙 중심적 역사관은 정면으로 변방의 역사관과 충돌합니다. 최영은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 제주사람들에게 있어선 학살의 주범인 셈이지요. 뒤집어 보세요. 그 속에 역사의 진실이 있습니다. 최소한 소외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것이지요.

삼별초와 몽골의 역사를 따라가다가 군사독재 정권 옹호를 위해 급조해 놓은 박정희의 한심한 작태도 놓치지 마세요. 역사는 단지 과거에 국한된 게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재수의 난, 그 현장을 가다'입니다. 몇 해 전 박광수 감독이 사고를 쳤지요. 당시로서는 최고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 '이재수의 난' 말입니다. 사고를 쳤다면 혹 화제작을 만들었나 싶을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에요.

아주 개판을 친 겁니다. 역사를 아주 우스운 연애 장난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그 비싼 돈 들여가며. 저는 내 고향의 중요한 사건을 다룬 영화라 열심히 옹호해주고 싶었지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박광수가 공부를 덜 한 겁니다. 껍데기만 본 거예요. 앞서 이야기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제주도를 쳐다보았으니 당연한 결과일 겁니다.

하지만 이 테마를 택한 사람들은 그 영화 보느라고 들인 영화비를 고스란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 기행을 안내하는 박찬식 박사는 바로 이재수 난을 테마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거든요. 제주에 있는 소장파 학자들 중 저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이 테마 역시 '변방의 시선'이 중요합니다. 조선이라는 중앙 권력과 프랑스라는 외세와 한판 붙은 싸움이니까요. 누가요? 제주도 민중들이요. 그리고 이재수 난 발발 3년 전에 일어난 '방성칠 난'인 경우는 독립국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던 점도 눈 여겨 볼 만 할 겁니다.


자, 이제 슬슬 길을 떠나 볼까요. 어느 테마를 택했든지 유쾌하게 뒤집어 보세요. 그 동안 중앙 중심적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교과서적, 범생이적 시각을 확 까뒤집는 겁니다.

일회성 이벤트냐고요? 어허, 쯧쯧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화석화된 역사가 아니라 민중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려면 이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니까요. '변방적 시선' 말이에요. 이번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제주연수는 바로 이 '변방적 시선'을 경험하기엔 딱이지요?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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