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수비아코의 베네딕도 수도원<2> 2003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마귀의 유혹을 이기며

동굴 속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는 베네딕도는 극심한 유혹을 이겨내야 했다.
한번은 지빠귀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주위를 돌면서 기도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것은 기도를 방해하려는 마귀의 공격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새의 우짖는 소리를 듣다가 전에 만난 적이 있는 한 여인이 머리에 떠 올랐다. 그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속에 그리자 불현듯이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욕망이 치밀어 올라왔다. 어떤 사람도 유혹을 면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생활의 필수적 요소이다. 베네딕도는 그 기품있는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자 욕정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래서 그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쫓아가 기도를 중단하고 자기 이상을 저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베네딕도는 동요하며 갈팡질팡 했다. 이 위험한 순간에 베네딕도는 가까운 곳에 무성한 쐐기풀과 선인장 그리고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는 숲이 눈에 띄자 옷을 벗어버리고 가시에 마구 찔리면서 알몸을 던져 기도하였다. 이윽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온 몸이 쐐기와 가시에 할퀴고 찢기우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했다. 이윽고 욕정이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왔다. 이후 그는 그런 시련을 다시 겪지 않았다. 그는 대담한 행동과 강인한 의지로 그 유혹을 결정적으로 물리쳤던 것이다.
여기 중요한 것은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니 가시덤불따위의 세부적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유혹에 저항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오직 사람이 유혹에 맞서 싸운다는 것만이 의미가 깊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며 서슴없이 거친 방법으로 자신의 본성과 자주 치고 받는 접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 자신과 싸우지 않는 사람은 끝내 좌절하고 만다.
사람이 싸우고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그 싸움에 싫증이 난다면 이미 그 때는 항복한 셈이다. 베네딕도도 편한 가마를 타고 느긋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은 아니다.

동굴을 벗어나 이웃을 향하여
베네딕도는 3년동안 동굴에서 기도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동굴에 수도자 몇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의 원장이 죽었기 때문에 베네딕도에게 원장이 되어 달라고 청하러 온 것이다.
그는 즉석에서 거절했다. 그러나 그들은 졸랐다. 베네딕도는 서로의 신앙생활양식이 피차에 다르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끝까지 간청을 하여 그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베네딕도는 이렇게 독수 수도자의 생활에서 공주 수도자의 생활로 옮겨갔다. 이것은 그의 삶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은수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둘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실행하지 못했다.
그들은 혼자 살았고 이웃이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생각하며 베네딕도는 그 정든 동굴을 떠나 수도원으로 옮겨가서 이후 형제적 공동체를 육성하려고 했다. 사명자는 자기 혼자만의 구원의 기쁨에 있을 수는 없다. 마지막 한 영혼까지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들
베네딕도는 어느 정도 엄격한 성품이었지만 결코 냉혹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언행이 일치하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자들에게 수도원 규칙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이렇게 엄격한 수도생활을 요구하리라고는 예기치 못했다.
그들은 타성에 젖은 느슨한 생활을 원했으나 베네딕도는 수도자들에게 자신의 주관적 고집을 억제하고 수도자들의 일반적 원칙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얼마 안가서 드디어 심한 긴장과 대립이 빚어졌고 이 긴장은 폭발하여 격렬한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타협할 인물이 아니었다. 수도자들은 이 베네딕도를 수도원에 끌어들인 것을 몹시 후회하였고, 어떻게 하면 다시 베네딕도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모의를 했다.
드디어 수도자들은 폭력을 써서라도 그를 제거하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식탁에 올라오는 포도주 잔에 독을 탔다. 평상시와 같이 식탁에 앉았고 기도를 하자 그 순간 베네딕도의 잔은 산산이 부서졌다.
베네딕도는 즉시 그들의 악마적인 흉계를 파악하였다. 좌석은 경악하여 술렁거렸다. 수도자들은 자기들의 가면이 벗겨진 것을 알았다. 그는 일어나 말했다.
"형제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바랍니다. 왜 여러분은 나에게 엉뚱한 짓을 하려 했습니까? 나의 생활습관과 여러분의 생활습관이 결코 함께 어우러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원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초청해 놓고서, 하나님 앞에 헌신했다는 사람들이 세상과 똑같은 방법으로 독살하려 합니까?"
베네딕도는 환멸을 느끼며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동굴로 돌아갔다. 이것은 베네딕도의 생애에서 두 번째 맞는 환멸이었다. 첫 번째는 로마에서 학업을 포기하였을 때였다. 흉계가 탄로난 수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도 용서를 청하지 않았다.
베네딕도는 비애에 찬 심정으로 자기 동굴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은둔 기도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이 음흉한 살인음모는 당시의 풍조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도원이 아무리 두꺼운 담에 둘러 쌓여 있어도 시대풍조는 담을 뚫고 스며 들어왔다.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사람의 생명은 거룩한 것이 아니었다.
수도원이 먼저 사탄의 공격에 맥을 못추었다. 수도생활은 하나의 획기적인 영성운동이다. 그러나 베네딕도의 말대로 많은 수도자들은 "삭발을 하고 하나님을 속이는 사람들"이었다.
이 무서운 말은 현재에도 우리의 귀를 때리고 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 온전한 사명자의 길 그는 동굴에서 다시 기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숨어 사는데도 불구하고 베네딕도의 은둔기도생활은 사람들에게 점점 널리 알려졌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의 은둔생활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자기들도 같은 생활을 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이런 사람들이 그 주변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정주하였다.
베네딕도는 그들이 새로운 생활방식을 익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해서 비록 아주 작은 규모이기는 했지만 새로운 수도원이 형성되었다. 이 두 번째 수도원은 서서히 성장해 갔으며, 마침내 주변에 열두 개의 작은 수도원이 생겨났다. 이렇게 수도원의 기틀이 잡히자 그는 드디어 은둔기도생활을 결별하였다. 이제 그는 새로운 수도원공동체를 지도하는 입장이 되었다. 첫번째처럼 거칠고 황당한 수도원을 쇄신할 필요는 없었다.
원래 습성화된 마음의 태만은 쇄신이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이번에는 아예 새로운 수도원을 창설했으니, 이 수도원은 처음부터 그의 힘으로 육성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흔히 예기치 않았던 난관에 부닥치곤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 차차 소문이 퍼져 그 명망이 높아져 나갔다.
그는 환난 가운데 인내하며 기도하였고, 그 인내는 온전한 사명자로서의 연단이었으며, 그 연단은 오직 그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였다.

성서와 같은 기적들
베네딕도의 삶 속에는 많은 기적들이 따른다.
그레고리오는 매우 실천적인 사람이고 기적만을 추종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기적보다는 한 사람의 영혼을 회개 시키고 구원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베네딕도의 기적에 대해서 감추려 들지 않는다.
베네딕도 주변의 기적은 그의 경건생활과 영적 충만한 생활의 하나의 표징인 것이다.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
어떤 모습으로 죽는 가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다. 베네딕도는 마지막 죽는 순간에까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는 자신이 죽는 것을 미리 알았다. 그는 운명하기 전 사람들에게 자신을 부축해 일으켜 줄 것을 부탁한다.
"소망 중에 바라보던 참다운 본향, 그 본향에서 우리 주님이 나를 영접하시는데 어떻게 감히 누워서 갈 수 있는가? 일어나서 경건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접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547년 3월 21일, 그는 이렇게 일어나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으로 손을 하늘로 쳐들고 기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베네딕도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을 지니고 살다 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수도원의 좁은 문



좁은 문앞에 선 김목사님



수비아코에 우리를 안내하신 로마의 홍목사님과 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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