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수비아코의 베네딕도 수도원<1> 2003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여행할 때 들렸던 이탈리아의 로마 근교 수비아코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원을 소개합니다. 내용은 베네딕도 성인에 관한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택함
베네딕도는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동로마제국이 세워지는 시기의 혼란한 시기인 AD 480년 누르시아의 어느 명문가문에서 태어났다.
청년기에 베네딕도는 당시의 관습을 따라 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로 보내어졌다. 학문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갖고 로마에 갔으나 그는 실망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은 악습의 심연에 빠져 있었고, 도덕적 퇴폐는 베네딕도에게 환멸을 주었다.
베네딕도는 이러한 당시의 악습을 타락의 징조로 단정하였다.
그는 단연히 도덕적 타락과 술수와 음모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의 학문을 포기하고, 그는 대신 영적인 인간으로 머물러 있기를 결심한다. 베네딕도는 평범한 술수와 음모로 출세하는 지식인보다는 영적인 인간을 택했던 것이다.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그는 의식적으로 무식한 채 물러갔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식하지 않았다. 그는 소위 유식한 무식을 처음으로 표방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는 위대한 무식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오직 구령(救靈)에 도움을 주는 지식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
아필레(Afile)에서의 체의 기적
세상학문을 포기한 베네딕도는 아필레로 유모와 함께 이사하였다.
이 아필레에서 한가지 일화가 있다. 하루는 유모가 이웃집에서 점토로 만든 체를 빌려 왔다.그런데 사용하다가 탁자에서 떨어뜨려 두 동강이로 깨지고 말았다.
유모는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며 몹시 울었다. 유모에 대해 불쌍한 마음이 들은 베네딕도는 깨어진 체를 집어 들고 기도하러 갔다.
잠시 후, 베네딕도는 온전한 체를 들고 돌아왔다. 이 일은 동네에 놀라운 사건으로 소문이 났고, 사람들은 그 체를 갖다가 교회 문에 걸어 놓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한 기적을 갖고 떠들썩 하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해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날 자기 유모에게도 말하지 않고 남 몰래 그 동네를 떠나 깊은 산골 수비아코로 향했다.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 - 3년간의 동굴기도생활
베네딕도는 세상을 등지고 고독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로마에서 50Km 떨어진 깊은 산골 수비아코 (Subiaco)로 갔다.


깎아지른듯한 절벽위에 돌을 뚫고 동굴을 만들었다.
수비아코에서 그는 로마누스란 수도자를 만나게 된다.
로마누스는 베네딕도에게 수도복을 한 벌 주고 가파른 절벽에 있는 비좁은 동굴을 가르쳐 주었다. 베네딕도는 이 세상의 칭송보다는 오히려 고난 속에서 홀로 있기를 바랐다. 로마누스란 수도자는 동굴에서 가까운 수도원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몫의 빵을 남겨서 바구니에 넣어 때때로 동굴 위에 있는 바위로 가서 바구니에 밧줄을 매달아 베네딕도한테 내려 보냈다.
베네딕도는 동굴에서의 기도생활기간에 그 빵 외에 다른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했다.



기도하는 베네딕도의 모습. 빵을 들여다먹던 바구니.
동방에서는 이미 이런 형태의 은수생활이 있었지만 서방에서는 아직 거의 없었다.
그 당시 기독교는 지하에서 올라와 대중 속으로 왕성하게 퍼지고 있었다.
복음의 대중화와 더불어 세속화 또한 함께 따르게 되었고, 그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 정신보다는 통속화와 천박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최초의 은수자들은 영에 취한 사람들이었다.
베네딕도의 동굴생활은 참혹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빛나고 있었다.
한번은 목동 몇 사람이 동굴에 있는 그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처음에는 어떤 짐승으로 보았다. 그러나 사람인 것을 알고는 호기심으로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다.
그래서 베네딕도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생활방식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다.

수도원 벽의 프레스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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