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쌍둥이...감사합니다...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이정복
전도사님이라고 해야할지, 형님이라고 해야할지......?

이쪽 세계가 아무리 "저쪽"세계와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형님은
좀 그런 것 같네여...

먼저, 보내주신 선물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주신 글도 감사하구여.

성호를 통해 메일로 소식 전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이곳을 더 자주 들어오실 것 같기도 하구, 더 친한 것 같기도 하구....ㅋㅋ

잘 지내고 계시죠? 소식은 가끔 성호를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먼길, 힘든 결심이 아름답게 열매 맺으시길 기도합니다.

담에 또 소식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작성자 : 손성현
=> 내용 : 아침 여덟 시가 지났는데도 창 밖은 여전히 희부연 합니다.
부지런히 학생들이 자리를 잡아 앉고
교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와 짧은 인사 뒤에
곧바로 강의를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밝아오는 저 하늘처럼
아직 혼탁함을 여의지 못한 나의 정신에도 빛이 스며들기를, 하고
스스로에게 속삭입니다. 카랑카랑하게 강의실을 울리는
교수의 독일어가 그 어수룩한 나의 기도를 가차없이 끊고 들어옵니다.
그렇게, 몽상을 용납하지 않는 치밀한 논리 언어의 장에서
한참 휘둘리다 나오면 지금 나에 대한 실망, 과거 나에 대한 분노,
앞으로의 나에 대한 연민 등이 한꺼번에 뒤엉켜
몸과 맘이 아예 답답해질 때도 있습니다만
간간이 정신을 확 깨워 주는 문장이 들려 이해되고,
논리 전개의 일단이 어느 정도 파악되는 때도 있어 숨통을 틔워 줍니다.

여기는 독일 남부의 대학 도시 튀빙엔이고,
저는 잘 살아있습니다.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었을 텐데
이제서야 연락을 띄우게 된 것을 먼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순발력 있게 글을 풀어내는 재주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삶의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허공에 붕 뜬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라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간신히 기숙사에 자리를 잡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독일어도 제대로 안 되는 주제에 라틴어도 듣고 있구요.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의 의미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을 하다가
거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지금이 딱 그렇군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외울 건 외워야 하고,
읽어갈 건 읽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얼마나,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지만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자꾸만 밖으로 나와 걸어다닙니다.
이곳 생활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한적한 산책 코스가 많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수첩에 적어온 틱낫한 님의 글을 떠올립니다.
"홀로, 또는 여럿이서 천천히 걸으라.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걷기 위해 걷는 것이다.
그것의 목적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함이다.
...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 숨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

아내와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어린 아들한테 아비 노릇 못하고 있는 죄책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보고픈 사람들에 대한 대책없는 그리움,
공부에 대한 자신 없음 ...
불어오는 바람에 휙 날려보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면서 땅에 꼭꼭 밟아 묻어보고
돌아오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집니다.

아내와 가끔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청파의 주보 한켠에 미소처럼 빛나던 한 구절
"우리의 미래는 밝습니다"를
자주 반복합니다.

이렇게라도 보고서를 쓰니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모두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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