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작은 음악회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이른 아침엔 흰눈이 펑펑 쏟아지더니 아침 8시 가까워서부터는 비가 되어 내렸다.

제법 거센 바람을 타고 펄펄 날리는 눈송이들이 오늘을 특별히 열어주었다.

서울에도 눈이 오면 참 좋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눈 속에 푹 파묻힌 우이동 길, 곧 사슴이라도 뛰어 나올 것 같은 화계사 뒷 숲, 북구의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같은 몽촌토성의 언덕...

그런 곳들의 그리움은 잠시 뿐, 교통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뒤 따른다.



오후의 <작은 음악회>는 참 좋았다.

50대 중년의 안구건조증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을 촉촉히 적셔주었다.

어두운 통로를 다 뚫고 나와야 비로소 소리가 되는 관악기의 음은 그 걸음대로 내 가슴속까지 그냥 밀고 들어온다. 좁고 어두운 긴 관을 유연하게 통과한 부드러운 소리, 거센 몸짓으로 관을 헤치며 뚫고 나온 힘찬 소리, 인생이란 그런 관악기의 음이 아닐까.

현악기는 현과 활이 서로 부비적 거려야 비로소 음으로 완성된다.

우리네 삶에도 그런 부비적거림이 없다면 기쁨의 소리도 슬픔의 소리도 없을 것이다. 중년 남자의 묵직함 같은 첼로의 낮은 음도 좋고, 천상까지 뚫고 올라갈 듯한 바이올린의 맑은 고음도 좋다.

난 특히 최성애 집사님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음악에 무지한 만큼 아주 단순하다. 평소의 음성과 똑같은 음성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클라식이나 펍이나 우리 가요 또는 창, 모든 노래들은 노래부르는 이의 평소 목소리와 다른 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최집사님은 평소의 음성이나 노래부를 때의 음성이나 항상 똑같다. '제 소리'를 항상 지니고 있는 그의 노래가 나는 좋다.



쓴 맛을 알맞게 우려낸 고들빼기 김치의 쌉싸롬함은 별미인데, 제대로 우려내지 못해 씁쓰레할 때는 그저 쓴 맛일 뿐이다. 뱉어버리고 싶은 쓴 맛. 요즘 피곤에 지친 내 입안엔 이 뱉어버리고싶은 쓴맛이 가득 고여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작은 음악회가 감미로운 맛으로 그 쓴 맛을 중화시켜주었다.

정지용이 "그립어"하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하루였다.

밖엔 여전히 회색빛이고 질척거리는 날씨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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