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눈에 보이는 것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레겐스부르그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곳 대학에 계신분이 시내를 안내하면서 이곳저곳 건물을 가리키며 하는 말, 이건 남편이 설계한 것이고, 저건 시아버님이 설계한 것이고... 이런 식으로 몇 개의 건물을 소개했다.
그 때 난 처음으로 건축가가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을 남겼고, 그것이 몇백년도 남아있으니까.
물론 화가들의 그림이나, 문학작품이나 그런 것들도 남아있는데, 막상 아는 사람이 그렇게 직접 건물을 가리키며 말을 하니 <남아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이 실감났다. 그리고 부러웠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생각났다. 현존하는 실물이 있는 경우를 보면 죽어서 이름을 남길 뿐만 아니라 창작의 실물까지 남기는 직업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홍익대학 산업디자인학과의 졸업 작품전에 갔었다.
상부의 간섭도 없고, 회사의 방침에 따를 필요도 없고, 판매의 위험부담도 없는 학생들의 창작품들은 얼마나 신선하고 자유로운가! 멋진 작품전이었다.
조카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어머니는 연신 그 눈에 보이는 학업의 결과물에 대해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신다. 그걸 만드느라 수없이 많은 밤을 새우며 고생하고 애썼다고 안스러워하신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하신다.
난 질투와 시기심이 많은 여자인가. '에구, 우리 아들도 그만큼 열심히 하고 애썼는데...'
레겐스부르그에서 건축가가 참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나도 그러지 않았는가. 김교수님의 남편이 지은 집, 시아버지가 지은 집을 보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부러워했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확신하고, 그 분을 믿는 내가, 남들이 남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부러워하다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없이 많은 종류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들! 그것들도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다져둔다.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