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나누기 ... 가족 서리단~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손성현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마음 놓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닌 터라
대학교 도서관에나 나와야 하루 30분씩 제한적으로
메일 확인을 하는 수준입니다.
워낙 글 하나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인지라
여태까지 이야기 꾸러미 하나 올려놓지 못했던 것
널리 양해해 주시길...

한국 축구가 꿈에도 그리던 "십뉴깡"을 먹더니만
이태리, 스페인 제치고 4강에 올랐습니다.
슈투트가르트에 사는 어떤 분은
이태리 식료품점에 같다가
한국 사람한테는 과일 안판다고 이태리인 주인이 열을 내는 바람에
빈 손으로 돌아왔다고 하시더군요. 참...
저는 개인적으로 축구 경기 보는 것을 썩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같은 집에 사는 독일 친구들이 오히려 저보다 흥분해서
경기가 있는 시간이면 축구 같이 보자고 들볶습니다.
그 덕에 저도 한국이 스페인마저 이기면 독일과 맞붙게 된다는 것 정도는
아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내일로 다가왔군요.
그 경기에 좀 거리를 둔 채 조용히 제 방에 칩거하려던 저에게
이번에도 고 짖궂은 독일 친구들이 어제 저녁에
내일 경기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면서
경기 함께 보자고 ... 거의 거부할 수 없는 톤으로 약속을 잡아버리더군요.
뭐를 해도 집요하게 따져보고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은
월드컵 축구 경기를 놓고서도 무슨 논문 쓰듯이
논리적으로, 수많은 참고 자료를 인용하면서 아주 심도 깊은
논평을 합니다.
한국팀이 이태리나 스페인 같은 강팀과 치룬 경기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죠. 저의 짧은 듣기 실력으로도 느낄 수 있었지만,
여기서 오래 산 사람들이나 교포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독일의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 축구의 선전에 대해
좀 기분 나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럽 중심적인 발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의 축구팬들은 자기 팀이 이겨서 저렇게 열광하지만
사실, 축구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나 어떻다나...

시간이 없는 관계로
곤지암에 있는 우리 식구들 얘기도 잠깐...

빠알갛게 예쁘게 익은 앵두가 이 쪽 담장 너머로
가지 하나를 뻗었답니다. 이제 돌이 갓 지난 민호가
먹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나요?
그래서 그 엄마가 긴 팔을 살짝 뻗어서
민호 좋아하는 앵두를 한웅큼 서리했답니다.
민호의 새하얀 티셔츠가 빨간물이 들때까지 그곳에서
함께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하네요.
이름하여 모자 앵두 서리단!!
이것이 지금 제 가족의 조기교육 수준입니다.

저요?
저도 여기서 서리하고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잘 익혀 놓은
사유의 열매 서리...
여기는 수업료가 없으니까
"서리"라는 말도 그럴싸하네요.

여러분
많이 보고싶네요.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