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가슴 저미지 않고 행복하게 기억하고 싶습니다.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夕佳軒
존 웨슬리는 거듭남의 내적 증거가 기쁨과 평화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저는 거듭나려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 며칠은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이 풀리지를 않아서 그 근처만 건드려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아마도 영화 ‘집으로’를 보고난 후유증인 것 같습니다.

철없는 손자의 온갖 투정을 묵묵히 받아 주시는 할머니, 당신은 닳고 닳은 고무신은 꿰매고 또 꿰매어 신으면서도 산나물과 호박을 팔아 손자의 운동화를 사주시던 할머니,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 당신은 괜찮다 하시며 손자 앞으로 밀어주시는 할머니, 버스비가 없어서 손자 홀로 태워 보내시고 그 먼 산길을 손자가 들고 가기 싫다며 팽개친 무거운 호박을 들고 굽은 허리,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어오시던 할머니, 켄터키 치킨이 먹고 싶다는 손자를 위해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닭을 사다가 백숙을 차려 주시고 몸져누우셨던 할머니, 켄터키 치킨과 백숙과도 같은 의사소통의 어긋남이 서서히 해소되면서 어린 손자가 비로소 할머니의 사랑을 깨달을 즈음에 다가 온 헤어짐......

손자를 태운 버스를 떠나보내고 할머니는 당신의 삶처럼 굽이굽이 굴곡지고 가파른 길을 따라 당신의 집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카메라의 앵글에 할머니의 집이 잡힙니다. 마치 할머니를 연상케 하는 다 쓰러져가는 너와집...... 다 퍼내어 주고 빈껍데기만 남아 있는 그 집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도, 심지어 할머니 자신마저도 그 허허로움을 메울 수 없다는 느낌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자신을 비워냈다고 하기 보다는 지워내는데 익숙해진 나머지, 마침내는 자신을 잃어버린 채 찾을 수 없게 된 할머니의 한스러움이 다가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항상 할머니께서는 긴 긴 밤이 찾아올 때마다 놋쇠 재떨이에 긴 담뱃대의 재를 떨어가며 당신의 일생을 흐느끼는 노랫가락에 실어 반추하시곤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벽장은 항상 손주들 차지였고, 자물쇠가 굳게 채워진 앞닫이 속에는 자식들이 선물한 새 옷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체력장 때문에 다리가 아프다며 투정을 부릴라 치면 어느새 할머니는 밤 늦도록 다 큰 손녀의 다리를 주물러 주시곤 했습니다. 참외며 배를 깎아다 주시면 담배냄새 난다며 철없이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었지요.

할머니 몰래 빈 담뱃대를 한 번 빨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연초가 다 털려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숨을 뱉기 힘들 정도의 맵고 독한 맛이란 ...... 그 때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가슴을 달래는 장치가 맵고 독한 연기라는 사실이 갖는 역설적인 의미를 말입니다.

저는 할머니의 사랑을 칭송하고 싶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쓰러져가는 너와집을 감히 성소로 미화시키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가슴이 저며 오는 마음으로 할머니, 또는 어머니를 기억하는 세대는 제가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지워낸 자리에 한이 자리 잡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워 냄으로써 새로운 기쁨과 평화로 채워지고 성숙해지는, 그리고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이웃으로까지 확장되는 사랑의 담지자로서 이 땅의 여성이 기억되어 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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