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어머니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박범희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게 있어 어머니란 존재는
항상 가슴에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아마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는 생각때문일겁니다.

제가 벌써 초등학교 다니는 자식들을 둔 아버지로서
이맘 때쯤 되면 아이들이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과 카드를 받고
한편으로 기뻐하며 우리 아이들이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제대로 자식노릇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늘 동료 선생님과 어떤 이야기 끝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한 이야기는 대충 이렇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봅니다.
중간고사를 볼 때였어요.
저는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은 괜찮은데 아침잠이 많아서
항상 깨워야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 날은 어쩐 일인지 소변이 마려워서 일찍 눈을 떠
밖으로 나오는데, 어두컴컴한 부엌 한 구석 -왜 예전 연탄을 때는
부엌의 경우에는 부뚜막이라고 있었잖아요?-에 촛불이 하나
밝혀져 있고, 그릇에 물이 담겨져 있고, 거기에다대고 우리 어머니가
절을 하면서 하염없이 무어라고 중얼거리시는 거였어요.

그 이후에 저는 소변을 보고 다시 들어와서 잠을 잤는데,
그 날 일기를
"우리 어머니가 나를 위해 이렇게 정성을
들이시는데 내가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서 우리 어머니를
편히 모셔야겠다."
뭐 이런 식으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어려운 집안에서 자식이 잘되어야 집안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어머니와 거기에 부응하려는 저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제가 느낀 것은
어머니의 정성으로 제가 성공했느냐 못했느냐가 아니라
그 어머니의 정성이 제가 이만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었어요.

지금의 저를 되돌아보면
아이들에게 이런 학원 저런 과외 등등을 시키면서
세상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아이가 되도록 노력을 합니다.
문제는 대충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또 중요한 것은
가끔은 그것으로 다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주셨던 그런 정성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지
반문해봅니다.

물론 세상이 바뀌었지요.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바뀔 수 없는 것
아니 바뀌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그런 어머니와 같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사랑이 자기 가족의 한계를 넘어서 세상으로 퍼져 나갈 때
세상은 좀 더 평화로운 곳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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