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잃어버린(모르고 있는, 잊고있는) 역사를 찾아서<2>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http://user.chollian.net/~ikch0102/n-33.htm에서 옮겨왔습니다.
<한국 기독교와 역사>에서 전덕기 목사님의 생애를 연구한 것인데, 앞의 내용을 생략하고 <청파교회>부분만 옮깁니다.
끝부분에 연화봉(현 청파교회)라는 부분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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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2회 연구모임 주제발표(1998. 9. 5)

전덕기 목사의 생애 재구성

이덕주(감리교신학대학원 강사/한국교회사)

~~~~~~3.4 상동교회 담임
1907년은 전덕기의 생애에서 가장 빛난 활동을 보인 해이자 동시에 개인적인 고뇌도 깊었던 해였다. 우선 가장 큰 고뇌는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스크랜턴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은 것이었다. 스크랜턴은 1904년 2월 귀환한 이래 한국 선교를 관리하는 감리사(Superintendent)가 되어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으나 1905년 5월에 한국과 일본 선교를 관리할 감독(Bishop)으로 해리스(M. C. Harris)가 나오면서 선교 정책과 방법에 있어 해리스 감독 및 미국 선교본부와 종종 마찰을 빚었다. 그는 특히 해리스의 '일본 편향적인' 선교 자세에 우려를 표하였다. 그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선교사들은 '중립적' 위치를 지켜야 하며,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 문제에도 '중립적' 위치를 지켜야 한다고 보았다. 해리스처럼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드는 행위도 비판하였지만 과격한 민족주의 기독교 신자들이 정치 현실에 참여하여 투쟁을 벌이는 것도 비판하였다. 1905년 10월, 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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