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비오는 날, 슬픈 이야기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며칠 전, 한 여자가 죽었습니다.
애절한 울음으로 그 여자를 내 가슴에 묻었지요.
묻어둔 사람, 그냥 잊으려했어요. 그런데 종일토록 비가 내리는군요. 그 여자의 죽음 위에 내리는 비,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 사이에 내 눈물 몇 줄기 보태어 뿌려줍니다. 다음 세상에선 행복하라고.

그 여자의 죽음이 더욱 슬픈 것은, 그 여자가 캐리어우먼으로 대성하리라는 남달리 큰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갔기 때문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여자의 꿈이 너무 작고 소박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간 것이 더욱 가슴아픕니다.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과 저녁상에 마주앉아 담소하는 것, 남편의 옆자리에 앉아 운전하는 남편의 입에 귤을 까 넣어주며 낯선 길을 달리는 것, 편안한 자세로 부드러운 음악을 남편과 함께 듣는 것, 이런 가능한 꿈들을 허락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마도 내 생애에 가장 많은 눈물을 그 여자의 죽음 위에 뿌렸을 겁니다. 애통하게 울었어요. 한꺼번에 다 울고 다시는 그 여자의 죽음을 생각해내지 않으려고.
그런데,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내리는 빗속에서 나는 다시 그 여자를 생각해냅니다. 남아있는 그 여자의 남편, 죽은 그 여자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 그를 위해서 난 정말 아무것도 해줄 게 없으니 안타깝군요.
죽은 아내 대신 그와 마주앉아 행복한 저녁식사를 해줄 수도 없고, 그의 자동차 옆자리에 함께 타고 그 여자가 그랬듯이 유쾌하게 재잘거리며 그의 입에 귤을 까넣어 줄 수도 없고, 팔베게나 무릅베게를 베고 편한 자세로 그와 함께 음악을 들을 수도 없고........

그 여자는 죽었습니다.
이제 남아있는 그 여자의 남자는 어떻게 살아갈지......
이제 이 후로는 비가 더욱 더 많이 주룩주룩 쏟아져도 그 여자의 생각은 안 하렵니다. 잊으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요.

그 여자는 김춘수님의 시를 자주 읊었었지요. 가끔 그 여자가 읊던 김 춘수님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분수

1
발돋움하는 발돋움하는 너의 자세는
왜 이렇게
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져야 하는가,

그리움으로 하여
왜 너는 이렇게
산산히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

2.
모든 것을 바치고도
왜 나중에는
이 찢어지는 아픔만을
가져야 하는가,

네가 네 스스로에게 보내는
이별의
이 안타까운 눈짓만을 가져야 하는가,

3.
왜 너는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떨어져서 부서진 무수한 네가
왜 이런
선연한 무지개로
다시 솟아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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