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나머지 공부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손성현
이맘 때면 이상하게 꿈을 많이 꿉니다.
사실은 모든 사람이 하룻밤에 여러 가지의 꿈을 꾸는데
전혀 꿈을 꾸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잠에서 깨는 즉시 잊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저 자신은 꿈 기억에 관한 한 상당히 둔한 편입니다.
그런데 봄 기운 탓에 꿈의 강렬함이 배가되서인지
아주 생생했던 꿈의 여운이 오전 내내
저를 놓아주지 않을 때가 종종 있네요. 그 꿈 가운데,
낯선 독일 땅에서 그 땅 토박이들에게 될듯 말듯한 독일어로
뭔가를 말하려고 버둥대고 있는 제 모습이 간간히 등장합니다.

꼭 가야 할까? 갈 수 있을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숱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지난 몇 달이었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그 생각의 고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만,
몇주 전 출국일을 확정하고, 비행기 표를 예약했습니다.
보고드릴게요. 오는 4월 5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물론 그 전날인 4일에 비자가 나온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습니다.
뭐 하러 가냐고요? 공부하러 갑니다.
머리로 하는 공부, 낮은 포복하는 심정으로 몸으로 하는 공부하러요.

단비교회 정훈영 목사님은
봄이 되면서 농사일로 점점 바빠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고된 일 마치고 한 상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그 농부 목사님 제게 하시는 말씀:
"사람이 얼매나 칠칠치 못하면 나이 서른 넘겨서 까지 공부를 혀?
그것도 한국에서 안 되니까, 물 건너 딴 나라까지 가서 나머지 공부허네.
공부는 할 때 열심히 해서 빨리 끝내야지 원. 그 뭔 고생이여 .. 쯧쯧."
함께 앉았던 사람들도 저를 야유하면서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저도 목사님의 두 아들 다우리와 산우리에게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다울아, 산울아, 삼촌처럼 안 될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돼!"
두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끄덕입니다.

그 다음부터 사람들이 제게 왜 독일에 가냐고 물으면
<나머지 공부>하러 간다고 말합니다. 그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짧지 않을 이별을 예감하며 문득,
어렸을 적에 <삼국지>에서 읽었던 어떤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무명의 관우가 악명높은 어느 적장과의 결전을 앞두고
조조에게 출전보고합니다. 조조는 관우에게 따뜻하게 데워진 술을 권합니다.
관우는 "이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을 베고 와서 마시겠다"고 하죠.
그리고 관우의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용장 관우의 출정을
<나머지 공부>가는 제가 흉내고 있는 걸
관우가 알면 화를 낼는지, 가소로워하며 껄껄 웃을는지
모르겠지만(제가 아는 관우는 후자 쪽입니다만)
어쨌든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이 식기 전에 오겠습니다."
사랑으로 저를 배려해 주셨던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싱싱함을 여의기 전에 꼭 돌아오겠습니다. 그 때까지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를 의식하면서
나약한 저의 의지를 추스려 실력을 키우겠습니다.
저의 <나머지 공부>가 제 값을 할 수 있도록,
그 동안 저의 가족이 사랑 안에서 더욱 성숙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천안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신 분들...
비록 저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지만
어떤 분들이 안 오셨는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 ... 독일로 찾아오실 밖에요.
여러분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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