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엉겅퀴의 진실>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이명행
<엉겅퀴의 진실>


1992년, 하와이에서의 일.
저는 다큐멘터리 방송 작가로 하와이 대학 식물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하와이의 생태계를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와이는 화산의 용암이 솟아나와 만든 섬이고, 그 불덩이의 태초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단단하고 거대한 바위 섬은 토양을 만들었지요.
그 토양에 바다의 파도와 새들은 씨앗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아주 천천히, 우리가 상상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느리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와이의 동식물은 거의 천적이 없답니다.
천적이 없고 계절은 늘 여름이어서 적으로부터 방어할 어떤 무장도 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요.
인간이 그 섬으로 가지고 들어간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무장 상태의 동식물들입니다.
하와이에는 가시를 가진 식물이 없답니다.

그곳에 엉겅퀴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서울을 떠나기 전이었습니다.
방송국 자료집에서 하와이에 자라고 있다는 엉겅퀴를 보았던 것이지요.
그것은 그저 엉겅퀴가 아니라 수십년씩 자란 엉겅퀴 나무들이었습니다.
한해살이 엉겅퀴만 알고 있었던 제게는 대단히 인상적인 식물이었습니다.
저는 서울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PD에게 그 엉겅퀴 나무를 꼭 찾아 촬영을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엉겅퀴가 여러해살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수십년 씩 되었다는 제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지요.
어쨌든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은 저였으므로 엉겅퀴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엉덩이를 차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내용이 하와이의 생태계를 취재하는 것이었으므로 엉겅퀴에만 집착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저 균형만 잃었을까요?
아닙니다. 나중에는 이성마저 잃었지요.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은 채 몸을 뒤척이며 수십년 씩 된 엉겅퀴로 뒤덮혀 있는 하와이를 떠올리며 한 숨도 자지 못했던 것이 그랬고,
어쩌면 하와이는 가로수도 엉겅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도 그랬습니다.
어디 가로수 뿐인가요?
와이키키 해변에 서 있을 야자수마저도 실은 엉겅퀴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지요.

하지만 호놀루루 공항을 빠져 나온 저는 하와이의 가로수가 엉겅퀴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더불어 와이키키 해변에 서 있을 야자수도 그저 야자수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수십년 씩은 고사하고 단 일년 생 엉겅퀴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하와이 어딘가에 군락을 이루고 있을 수십년 씩 된 엉겅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약속이 되어 있던 식물학 교수를 만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 될 것이라고 믿고 다시 잠을 설쳤습니다.

이튿날 하와이 대학의 연구실에서 일본인 교수를 만났을 때 저는 낭패감에 빠졌습니다.
그에게 엉겅퀴에 관해서 질문을 해야하는데,
영어로 엉겅퀴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말을 통역해 전달하던 이마저도 엉겅퀴를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추한 모습까지는 다행이도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정에 초조해 하는 스텝들을 두고 수첩을 꺼내 엉겅퀴 꽃모양을 그려대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도가 넘치는 일이었지요.
제가 지금 생각해도 참 딱한 모습이었습니다.
서울의 자료 조사원에게 전화를 걸어 엉겅퀴를 영어로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봐 달라고 전화를 걸었을 즈음 저는 충분히 이성을 잃고 있었습니다.
왜 이 사람이 엉겅퀴에 이토록 집착하나?
모두들 궁금해하는 얼굴이더군요.

이쯤에서 다시 1967년 봄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앞에서 이미 이야기 했지만 저는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자연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엉겅퀴의 생태와 모양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그것을 보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을 보았느냐고 물으셨는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으므로 제가 나설 수 밖에 없었지요.
저는 그것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보았다고만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 집앞 하천가에 그것들이 지천으로 피고진다고 덧붙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지금도 그것들이 피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한 저를 바라보시며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지금 엉겅퀴 꽃이 피어 있다고?"
"예, 피어 있습니다."
"그래?"
"엉겅퀴 꽃이 피어 있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짓고 뜸을 들이시던 선생님이 이윽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럼 그것을 좀 따다가 친구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겠니?"
선생님의 그 미소가 조금 못마땅했습니다.
제 말을 못 믿겠다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의기 양양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문을, 그리고 잠시 후 교문을 달려 나갔습니다.
학교에서 그곳은 5분 쯤 달려가면 되는 거리였거든요.
학교에서 나와 그곳을 향해 달려가던 제 머리 속에서는 연신 엉겅퀴 꽃이 지천으로 피고 졌습니다.
내 엉겅퀴 꽃으로 온몸을 휘감고 돌아오리라.
훈장처럼 온 가슴에 엉겅퀴 꽃을 매달고 교문을 개선문인양 진군해 들어올 내 모습에 이미 이성을 잃었습니다.
몸에 달아 놓은 엉겅퀴 꽃들이 달릴 때 치렁거려 성가실 것이 지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엉겅퀴 꽃은 없었습니다.
꽃은 고사하고 그곳에 싹을 피어 올리고 있던 것들 중 어떤 것이 엉겅퀴인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제가 다시 학교로 돌아 간 것은 점심 시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둘째 시간에 학교에서 나왔으니 족히 두 시간을 엉겅퀴 꽃에 바쳤던 것입니다.
엉겅퀴 꽃은 6월에서 8월까지 핍니다.
그리고 제가 엉겅퀴 꽃을 찾아 헤맸던 그때는 4월쯤이었을 것입니다.
엉겅퀴 꽃이 피었을 리가 없지요.
선생님이 그걸 모르셨을까요?
세상에서 이 처럼 바보같은 질문은 없겠지요?

엉겅퀴 꽃을 찾아 헤매다가 지쳐 돌아온 저를 선생님은 두 시간 전 그 미소로 맞아 주셨습니다.
"그래, 엉겅퀴 꽃은 보았니?"
대답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데 선생님의 손이 제 머리 위로 올라왔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에 마치 제 어리숙한 머리통이 세례를 받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국화이기도 한 이 식물은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 살이 풀이지요.
가시나물이라고도 합니다.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데, 줄기는 곧게 서고 높이 50∼100cm,
전체에 흰 털과 더불어 거미줄 같은 털이 있습니다.
뿌리잎은 꽃필 때까지 남아 있고 줄기잎보다 크지요.
줄기잎은 바소꼴모양의 타원형으로 깃처럼 갈라지고 밑은 원대를 감싸며
갈라진 가장자리가 다시 갈라지고 깊이 패어 들어간 모양의 톱니와 더불어 가시가 있습니다.
꽃은 6∼8월에 피고 자주색에서 적색입니다.

하와이에서도 끝내 엉겅퀴를 보지 못했습니다.
수십년 씩은 아니더라도 이 삼 년 생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원이 없을
심정이 되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다시 잠을 설쳤습니다.

거창으로 이사와 들에 나갈 때마다 엉겅퀴 꽃을 봅니다.
엉겅퀴 꽃을 본 날은 복권을 사고 싶을 만큼 재수가 아주 좋습니다.

엉겅퀴는 영어로 thistle라고 한답니다.
꽃말은 고독한 사람, 엄격함이고요.
엉겅퀴 때문에, 아니 엄격하지 못했던 자신때문에
한 없이 고독해져본 일이 있는 저로서는 이 꽃말이 예사롭지가 않군요.

여름이 되어야 볼 수 있었던 꽃을 찾아 의기양양하게 교실문을 나섰던 그 봄,
선생님은 제게 또 하나를 가르쳐 주셨지요.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사물을 정확하게 보라는 엉겅퀴의 꽃말을 저는 이 글을 쓰기 조금 전에 알았습니다만, 선생님은 일찍이 1967년 그 봄에 제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하고 어리숙했던 제 머리 위에 주셨던 선생님의 그 따스한 손의 세례를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그런데요.
영어로 grasp the thistle firmly 라고 하면 "용기를 내어 난국에 대처하다"라는 뜻이 더군요.
어때요, 재미 있지 않습니까?
난국을 빚었던 엉겅퀴(thistle), 그게 약으로도 쓰인다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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