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중생의 도 2002년 01월 01일
작성자 김승하
니고데모가 예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두지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너는 다시 나야 한다는 내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마라.(요 3: 4-7)


고대 페르시아 지역의 종교인 짜라투스트라교에는, 지혜와 빛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오르마즈드)와 어둠과 파괴의 영인 '앙그라 마이뉴'(아흐리만) 이 등장합니다. 아후라 마즈다의 두 아들 중 하나인 '앙그라 마이뉴' 는 악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이 땅에 불행·질병·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아후라 마즈다'와 '아흐리만'은 선과 악, 창조와 파괴, 빛과 어둠의 영원한 두 원리로서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둘 사이의 싸움은 마침내 '아후라 마즈다'의 승리로 끝이 나고 '아흐리만'을 추종하던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노라면 선과 악이 항상 싸우고 있습니다. 선이 악을 이겼으면 좋겠는데 세상에서는 악이 선을 이기는 것만 같아 마음 아프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무얼 하시는 것일까. 이 세상의 악을 그대로 놓아두시기만 할 것인가. 정녕 하나님은 계시는가.

세상이 선과 악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 싸우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세상에 보여지는 선과 악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두 가지의 원리가 있습니다. 영의 원리와 육체의 원리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르면서도 또한 하나이기도 합니다. 육에서 난 것과 영으로 난 것은 서로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둘이 같은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의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드넓은 우주의 티끌만한 일부인 태양계하고도 지구 그리고 그 지구 가운데 한반도, 그 중 남쪽에 위치한 서울이라는 동네에 있는 남산 꼭대기에 팔각정이 있습니다. 그 팔각정에 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볼 때 그들이 처한 공간적 위치는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이 있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 있습니다.

암에 걸려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죽마고우인 친구가 말을 건넸습니다.
"이제 그만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그러자 그는 쌍심지를 돋우며 버럭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이 있는데 나를 이 꼴로 만들어?"

자신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아버린 이 세상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있었다면 자신을 그 꼴로 만들었겠느냐는 것이지요. 설령 하나님이 있다 해도 자신을 그 꼴로 만든 하나님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항변입니다. 그래도 학생 때 열심히 교회에도 다녔었고, 이제까지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왔는데 하나님은 뭐가 불만이라서 나를 이런 지경으로 몰아 넣느냐는 겁니다. 교회라고는 문턱에도 안가보고 나보다 더 나쁜 짓 하는 놈도 건강하게 잘 사는데, 왜 내가 이 꼴로 죽어야 하느냐는 그의 울분에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자칭 밑바닥 인생에서 시작해서 자수성가한 사람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해 울부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내게 이처럼 많은 재물을 허락하셨고, 나같이 보잘 것 없었던 자를 이처럼 귀한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에게 부와 지위를 가져다 준 세상에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언제나 자기의 편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셨기에 그는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인간의 힘으로 이 많은 부와 업적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그의 신앙 고백은 감동스럽고 그의 겸손은 존경스럽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며 그의 백성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십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이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공통점은 육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가치는 육체에서 난 것입니다. 그들에게 선과 악은 모두 육체에서 난 것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게 이런 질병을 주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곧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으로 낙착이 됩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내게 이렇게 부와 지위를 주셨다 라는 확신은 부와 지위를 얻지 못하면 곧 하나님은 없다 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둘 사이에 차이는 없습니다. 어느 쪽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생한 사람과 중생하지 못한 사람 사이에 차이점은 없습니다. 그가 처한 건강의 정도나 사회적 지위나 재산의 양이나 어느 것도 중생의 척도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몇 점 이상이면 우등생이라는 구별이 가능하지만 말입니다.

중생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유일한 차이는 서로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공간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향하는 바는 서로 다릅니다. 건강도 재산도 지위도 학벌도 배경도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건 항상 하나님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뿐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내가 가치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점을 확신할 뿐입니다. 그가 지향하는 바는 건강도, 합격도, 지위도, 편안함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시듯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사랑하려 할 뿐입니다. 예수처럼, 내 목숨을 내어놓아서라도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사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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