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말상대가 돼주는 일도 귀한 일이지요.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장혜숙

이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대청소를 하기로 했답니다.
묵은 먼지 털어내듯 일년간의 부끄러웠던 일들도 다 털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는 사람에게서 메일이 왔는데 남편이 위암 수술을 했다는군요. 5분의 1만 남겨두고 다 잘라냈대요. 이런 땐 어떻게 답을 해야할지 안타깝기만 해요.
제겐 가끔 이렇게 어려운 얘기를 전해오는 친구가 몇명 있답니다.
한 사람은 교통사고로 집에서도 휠췌어를 타고 생활하는 사람, 이 사람은 가끔 울적하면 제게 메일을 보내요. 3년 넘도록 속썩이는 발을 절단해야할지 더 참고 치료를 해야할지, 그런 어려운 질문을 해옵니다.
저는 직접적인 답은 할 수 없고 딴 소리만 잔뜩 쓴 후에 좋은 그림과 음악을 붙여서 답메일을 보내지요.
그러면 한동안 또 연락이 없다가 다시.... 이렇게 반복입니다.

또 한 사람은 죽은 남편에게 쓴 편지를 제게 보낸답니다.
처음엔 당황했었지만, 이젠 메일 받고 그냥 가만히 있어요. 답도 하지 않고요. 그러다가 한참 지난 후에 안부편지를 보내지요.
답을 쓰는 수고조차 하지않고도 그녀에게서 항상 고맙다는 인사를 받곤해요. 보낼 수 없는 편지의 수신자가 돼주는 것만으로도 제가 그를 상당히 많이 도와주고 있나봅니다.

이렇게 두 사람과 인연을 맺고 있는데, 이 해의 마지막날, 또 다른 사람이 안타까운 메일을 보냈어요. 앞서 얘기한, 남편이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여자가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 곳이 필요하답니다.
답은 안 들어도 좋아요. 무조건 말하고 싶을 때 말할 곳이 필요해요. 우리 모두에겐 그런 대상이 필요해요.
보낼 곳 없는 편지의 수신인이 돼주는 일은, 말을 들어주기만 하는 일은, 정말이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일이지만, 상대방에게는 대단히 큰 힘이 돼주는 일이랍니다.

그러니, 누가 내게 말을 하려할 땐 좋은 상대가 되어줘야해요. 말하는 사람에겐 절실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말은 고여있지 못하고 흐르는 습성이 있잖아요? 들은 말을 누군가에게 나도 하고싶어지거든요. 저는 그럴 때, 별아별 소리를 다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고합니다.
말이 세상의 어느 다른 곳으로 흐르는 것보다 그분께로 흐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게다가 좋은 답까지 내려주시니까요.

섣달 그믐날, 울적한 메일을 받고, 하나님께 고한다는 제가 이렇게 사람들에게까지 고했네요.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자는 이야기가 하고싶어서.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