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눈 내리는 날 본 한 장면(사진은 없음)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손성현
펑펑 눈이 내린 다음 날에는
병천 삼거리에서 사무실까지 걸어갔습니다.
뭐 버스도 옆으로 쭉쭉 미끄러지는 판에
제 낡은 차야 오죽했겠습니까?
이젠 더 이상 신을 일이 없겠다 싶었던 군화를
꾸역꾸역 신고 나왔죠
두꺼운 모자도 뒤집어 쓰고 눈과 얼음으로 범벅이 된
시골 길을 걸었습니다. 역시 ... 눈이 오면 애들이 최곱니다.
병천 초등학교 안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는,
웬만한 경사가 난 곳마다 눈썰매장을 만들어 놓은
아이들이 신나게 질러대는 탄성이었습니다. 눈싸움도
제법 치열하더군요.

등교길의 어린이들은 두툼한 옷에 모자와 목도리와 장갑 등을 끼고
재잘재잘대며 학교로 갑니다. 사실...
부모님의 차나 무슨 공부방에서 운행하는 차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수도 상당히 되는 것 같습니다.
걸어서 학교 가는 애들을 보면 괜히 반가운 거 있죠. 여긴 시골인데두요.

그런데 ... 갑자기 어떤 아슬아슬한 몸짓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이 미끄럽고 위험한 길을 어떻게 ... 하는 생각이 들 무렵에는
상당히 가까이 왔습니다. 자전거!
어른 자전거에 비해서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의 작은 자전거입니다.
그렇다고 요즘 도시 애들 타는 것 같은 세련된 것도 아니구요.
낡은 어른 자전거를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상당히 튼튼해 보이기는 했습니다. 그 자전거에...
초등학교 한 3학년쯤 되었을까요? 한 남자아이가
동생인 듯한, 그러나 저보다 많이 작지는 않은 여자아이를 뒤에 태우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그 모습은 위태롭지만은 않았지요 오히려
이상하게도 참 안전해 보이더군요.
발그레해진 볼에 앙다문 입술의 사내아이...
뒤에서 오빠의 옷을 꼭 잡고 있는 동생의 존재를 의식하는 듯이
결연한 낯빛으로 앞을 응시하며 패달을 밟고 있는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
당당하게 인도와 차도 사이의 경계를 유지하며 달리는 그 자전거가
내 옆을 싸~악 스쳐갈 때, 저는
뒤에 탄 여자 아이의 얼굴을 훔쳐볼 수 있었습니다.
약간 초조한 듯하기도 하지만
지금 자신이 붙잡고 있는 그 옷자락의 임자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스며나오는 듯했습니다. 참 ...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아서
눈부신 백색의 황홀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차가 미끄러질 염려는 없기에
엊그제부턴 다시 운전을 해서 휭하니 출근합니다. 10분이나 걸릴까요?
그런데 1시간 가량 걸어서 출근한 그 날,
잠깐 스치고 지나간 그 자전거, 그 자전거를 타고가던
어린 벗들의 얼굴이 오늘 출근 후에도 자꾸만 생각이 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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