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3. 기도에 대하여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손성현
저도 조지 부시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떠듬 떠듬 동시통역 때문에 내용이 불분명한 대목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 through the valley of (shadow) ... 하는 부분에서는
저도 멈칫했습니다. prayer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제가 부시의 연설문을 듣고서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은
그 내용과 어조에 담겨 있는 전투성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참사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연설문의 성격상 어쩔 수 없었나?)
"보이지 않는 비겁한 적"을 "색출"하여 철저히 "응징"하여
아메리카의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긴박해서였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생각을 안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의 직간접적인 원인이었던 미정부의 대외적 강경노선에 대해서는
전혀 자기 반성적 접근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어쩌면 이 연설문은
미국에 대해서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국가,
특히 이슬람 국가(또 거기 살고 있는 민간인)에 대한 군사적 폭력(보복)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을 끝맺더군요. God bless America!
하나님은 미국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미국이 이 일을 계기로 또 한 번의 군사력 과시에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는 분, 통쾌한 보복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복주시는 분이
하나님은 아니겠지요?
이번 사태로 미국 국민들은 진실로 "슬픔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슬픔 가운데 기도하는 그들을 위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넣거나, 그러려고 위협했던, 또 지금도 그러고 있는
아메리카에 대한 깊은 자성과 회개의 기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과연
"만인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담대히 나갈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담대한 보복"을 위한 기도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벌써 어떤 미국인들은 미국내 이슬람 세력에 대한
종교적 배타성을 공공연히 터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발 슬픔 속에 잠겨 있는 미국인들의 기도가
"악마에 대한 천사의 싸움"을 고양하는 기도가 되지 않기를...
미국이 중심이 되어 유포시켜온 힘의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와
방향전환이 기도를 통해 일어나기를...
"평화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오직 평화"라는 거룩한 깨달음이
기도 중에 미국의 경건한 신앙인들과 정책 결정자들에게 스며들기를...
"핵무기도 불사하겠다"는 무시무시한 포효보다는
일체의 폭력(지금까지 미국이 행사해왔던 것까지 포함)에 대한
저항이 바로 기도의 힘을 통해 자라나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없는
"성구 인용" + "기도"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폭력을 정당화했는지에 대한
문제 의식도 우리에게는 꼭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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