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콜럼버스에서 띄우는 인사 (새옹지마)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권혁순
입추가 지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유영남 권사님이 방문하고 계신 텍사스 오스틴에 비하면 별 것 아니지만, 그리고 한국에 비해서도 그리 더운 것 같지 않지만, 제 방은 지붕이 본격적으로 달궈지는 오후 4시를 시작으로 기온이 급격히 올라가서 새벽 2시까지 덥습니다. 바깥 세상이 무서워서 마음대로 문도 활짝 열어 놓지 못하기에 마파람도 기대할 수 없지요. 다행히 학교 연구실은 24시간 냉방이 가동되어 서늘하지요. 그래서 저는 학교 연구실에서 밤 늦도록 있는데, 남들은 제가 굉장히 열심히 연구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사실 외국에 혼자 있다보니 딱히 할 일도 없군요.

매번 온라인(on-line) 상에서 청파 교회를 보다가 지난 몇 주간은 오프라인(off-line) 상의 교회를 방문했죠. 아쉽지만 얼마간은 또 다시 온라인 교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얼굴을 맞대고 그리고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는 것은 참 정겨운 일입니다. 하지만 주일 교회에서 만남은 의외로 시간이 한정되어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지 못하죠. 이 곳 친교실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특히 저 처럼 외국에 있다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참 좋은 곳이지요.

이 곳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물론 저부터 노력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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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실감하는 말이지요. 어제 아침에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제목은 '죄송합니다'였습니다.

제가 사는 집의 계약 기간이 이달 말로 끝나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 살 집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곳의 집들은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몇 달만 있어야 하는 저는 남들이 살다가 비우는 집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근처의 대부분의 집들은 새로운 학년도가 시작되는 9월부터 계약 기간이 시작되이기에 그런 집을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한국에 있으면서도 계속 웹싸이트의 게시판을 검색하여 지난 주에 어렵사리 한 곳을 찾아서 이메일로 연락하였고, 이곳에 오자마자 직접 찾아가서 구두로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고 주변 환경도 괜찮은 편이고 방도 넓고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그 사람으로부터 방을 빌려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게 된 것입니다. 며칠 전부터 전화를 해도 받지 않길래 낌새가 좀 수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더군요. 방을 빼야 하는 날짜는 다가오고, 주변에서 저와 같은 사정으로 방을 구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방을 내 놓는다는 곳은 없고, 참 막막하더군요. 이러다가 길거리에 내 앉는 것은 아닌지, 잠이야 연구실에서 자면 되는데 각종 가재 도구들은 어디에 보관해야 하나.. 등등의 생각으로 심란하더군요. 어찌 이 분한 마음을 풀 수 있을까? 찾아가서 한 번 들었다 놓아 버릴까? 여러 가지 잡 생각을 하면서 점점 사악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참자. 그래 참는거야. 분풀이 해 보았자 무엇이 달라지겠나. 나만 나쁜 사람 되는거지.'

그러다 한인학생회 홈페이지에 방을 구한다는 게시문을 올렸습니다. 저와 비슷한 처지의 여러 사람들이 글을 이미 올렸기에 큰 기대를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그런데 불과 몇 시간 뒤에 저에게 이메일이 왔습니다. 자기 집에 빈 방이 하나 있는데, 기간에 구애 받지 말고 와서 살라고, 그리고 원한다면 식사 제공도 가능하다고요. 그러면서도 비용은 전에 구하려던 방 값보다 싸고요. 아직 그 방을 직접 보지 않아서 어떤 곳인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참 이상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전에 구두 계약한 집을 놓쳤기에 더 좋은 곳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기하죠? 눈 앞에 있는 좋은 것을 잃고 났을 때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것 말이죠. 물론 저는 이런 말을 요즘 많이 듣습니다.

박사후 과정 지원금을 받으러, 그리고 직장을 얻으러 지난 여름에 한국에 갔다가 그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하고 시간과 돈만 버리고 이곳으로 돌아 왔습니다. 참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저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눈 앞의 이익을 포기했을 때 주께서 예비하신 것이 차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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