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비슷한 기억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지선미
지금으로부터 23년쯤 전의 일입니다.

광화문에서 화곡동까지 운행하던 129번 버스는 붐비는 사람들로 꽤 악명이 높았습니다. 어느날 그 버스를 탔는데, 어떤 젊은 남자가 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마치 인천까지 가는 사람이 종로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과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때 저는 완강하게(?) 그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아무리 제가 피곤해 보인다고한들 그때의 제 나이는 10대 후반이었고, 따라서 그 남자의 제의는 제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자기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거라고 하면서 부득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려고 몇걸음 앞으로 나섰는데, 글쎄 이미 오래 전에 내렸어야 할 그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지 뭡니까? 붐비는 인파로 구부정하게 차창쪽으로 몸을 구부린 채 서 있던 그 사람에게 너무도 당혹스러운 나머지 눈인사조차 못한 채 황급히 내리고 말았던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제게는 깊이 남아 있답니다.

그 때부터 저는 그 사람으로부터 배운 방법을 버스나 전철을 탈 때마다 사용하고는 합니다. 내 앞에 장애인이나 약해 보이는 사람이 있을 때에 저는 슬며시 내리는 시늉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하지요. 어떤 때는 정말로 내렸다가 다시 탄 적도 있답니다. 그 사람의 친절이 제 안에 뿌리를 내렸다고나 할까요?

친절함이나 사려 깊음이 오히려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시대를 살아가기에 우리는 때로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하지요. 그러나 정말 친절한 사람은 상처에 연연하지 않고 친절을 베풀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집사님! 너무 우울해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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