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퍼온글)망가진 어른들과 희망인 아이들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박범희
즐거운학교(www.njoyschool.net)라는 사이트의 이명주칼럼에서 퍼온 글입니다.
이명주 선생님을 현재 고명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분인데, 교직경력 28년째라고 다른 글에 써 있더군요. 요즘 '교실붕괴'라고 떠드는 언론의 이야기를 뒤집어 생각해본 참 좋은 글인 것 같아 올립니다.


망가진 어른들과 희망인 아이들

이명주 기자 mj213@chollian.net

어른들의 붕괴지수에 비하면 아이들은 건강하다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다고 여기저기서 야단들이다. 그러나 정작 다급한 것은 교실 붕괴보다 훨씬 심각한 어른들의 붕괴요, 우리 사회의 삶의 붕괴다. 교실 붕괴와 교육 위기 속에는 우리 어른 사회에 대한 아이들의 전면적인 불신과 거부와 항변의 몸짓이 들어 있다. 어른들은 이 항변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신기할 정도로 멀쩡한 아이들

새 학기가 시작했다. 만물이 소생하고 희망 어린 덕담을 주고받을 때이다. 지난 겨울이 혹독했던 만큼 오랜만의 봄 햇살이 사뭇 마음을 설레게 한다.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모습도 한결 산뜻하고 신선한 긴장미를 느끼게 한다. 이미 지난 학년에 낯이 익은 아이들마저도 새 학기 교실에서 만날 때는 서로가 새로운 눈짓을 주고 받기 마련이다. 교육에 대한 위기감이 날로 하늘을 찌를망정 아직 이런 식의 눈짓이 오가는 교실엔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 아직 교실에는 그나마 희망이 좀 남아 있다. 교실 붕괴를 말하는 목소리들이 오늘도 여전하고, 상당 부분 실제로 만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장담컨대 교실 붕괴 정도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화면만으로 교실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이런 말이 믿기지 않겠지만(언론의 속성이 갖는 일면적인 과장이나 축소에 가려 실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입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지금의 어른들을 구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이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생활하지 않으면서 (또는 그럴 마음도 없으면서)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역시 이런 말이 실감 있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보여주는 붕괴지수에 비한다면 아이들은 아직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다고 할 수 있다. 정성을 기울여 마음을 주고받을 작정을 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면 아이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다잡고, 바로 세우기 위해 눈물어린 노력을 보여준다.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빠른 속도로 회복하는 자성적 노력은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교실보다 형편없는 교실 밖 세상

난 우리 시대에 이런 어른들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다. 온갖 왜곡된 고집과 병든 아집에 사로잡힌 채 자기보다 약한 이들을 핍박하거나, 부패한 삶의 방식임이 분명한 처신들을 지혜로운 무기인양 휘두르는 '작은 폭군'들을 만났을망정, 자기가 이 세상을 썩게 만들고 있는 주범의 한 사람임을, 통렬한 아픔을 보여주는 각성된 어른들을 거의 만나본 기억이 없다. 이게 바로 우리 어른들의 현재의 모습이다. 이런 어른들 세계가 그나마 아이들 덕에 아직 다 안 망가지고 버틴다고 말할 수 있다.

교실보다 못한 곳이 교무실이고 교무실보다 형편없는 곳이 교문 밖의 세상이다. 그런데 그 교문 밖에 있는 이들이 학교와 교무실을 핍박하고 학교와 교무실이 같은 방식으로 교실을 핍박한다.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지만, 정말로 자기 부모보다 훌륭한 학생들이 아주 많다.

요즘 어느 신문에 연재되는 교육 문제 기획기사를 보고 있으면 정말 아이들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걸 전국민이 잘 알 수 있게 분석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기사를 읽고 있으면 역설적으로 아이들 빼고는 이 세상에 희망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거기에서 지적하고 있는 교육 문제의 상당 부분이 가치 파탄과 진실 왜곡과 부패와 정의의 희화화 등 온갖 사회 부조리의 '기본 구조'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를 앞장서서 형성해온 주범이 바로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해 왔다고 자부하는 재벌 언론사 따위의 권력 집단들이다. 그 기사에는 그러나 주범으로서의 반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부패한 권위주의의 근본 속성이다.

이래놓고 아이들이 망가진다고 난리를 떤다. 저들은 진작 망가진 지 오래인 처지인데도 스스로 그걸 부정하고 있거나 자성 불능의 증상을 보이면서 가장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척 끝내 강고한 위선의 철판을 면전에서 거두지 않는다. 그야말로 철없는 아이들이나 힘없는 선생들을 윽박지르면서 '거룩한' 수구적 덕담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잠수함 속의 토끼'

아이들이 망가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망가져버린 우리 사회 대부분의 어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아직 건강하고 순결하다. 말할 것도 없이 교실 붕괴와 교육 위기의 근본 원인은 사회 붕괴와 사회 위기에 있다. 아이들은 다만 '잠수함 속의 토끼'가 산소 결핍 상태를 미리 알려주듯이 우리 사회에 본받을 만한 삶의 모습이 결핍되었다는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향해 묻는다. 당신들은 결국 이 세상을, 그리고 이 숨막힐 듯한 삶을 어떻게 몰고 갈 작정이냐고. 그 통렬한 질문의 모습이 교실 붕괴와 교육 위기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우리 어른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과 거부의 몸짓이 담겨 있다. 어른들이 그 의미를 읽고 있을까?

자,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응답하겠는가? 아니, 응답할 준비나마 갖추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부패지수는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대체 썩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이고 썩지 않은 어른이 드물 정도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돈 찔러주기나 향응 관행만 떠올려 보아도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그 속에 젖어 살기 때문에 그런 건 이미 부패 현상이라고 여기지도 않는 풍토인 듯싶지만.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곳곳에 많다는 얘길 듣는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사회 전체가 이 모양일까? 정말 우리 어른들이 착하고 선량한 걸까? 거짓과 불의 앞에 굴복하고 자기 일신을 위해 온갖 비겁한 굴종과 아부로 세상을 길들이면서 어떻게 아이들이 온전하게 크기를 감히 욕심 낼 수 있는가?



아이들에게 윽박지르지 말아라

진정으로 아이들이 걱정스럽다면 먼저 우리 어른들 자신의 붕괴를 막아라. 부패한 삶의 방식을 청산하지 않고 아이들에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어른들 스스로 자신의 부패와 불합리와 썩은 권위주의를 청산하라. 무엇보다도 가장 비인간적이고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수구적 권위주의를 쳐 부셔라.

좌지우지해온 건 자신(어른)인데 왜 책임은 남(아이)에게 씌우는가? 이게 우리 사회의 소위 힘깨나 쓴다는 어른들 세계의 기본 논리다. 돈과 힘만 움켜쥐고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인되거나 오히려 추앙되는, 참으로 천박한 풍토와 비루한 문화 속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건강하고 희망적이기를 바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아이들의 절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사회를 향해, 그리고 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그 잘난 어른들을 향해 끊임없이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진정한 삶의 희망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항변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줄 수 있는 응답은 무엇일까? 부패와 부조리로 얼룩진 우리 사회 삶의 방식을 반성하고 그 각성된 모습을 자신의 일상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삶의 모범을 보이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 실천적 응답을 기피한 채, 항변하는 아이들을 또다시 윽박지른다면 아이들은 어른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을 더욱 거세게 표출하려고 들 것임에 틀림없다.


2001.03.20 ⓒ 즐거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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