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삼위일체의 의미와 신비 2001년 01월 01일
작성자 omega
여호와 샬롬!
주안에서 평안하신지요
먼저 허락없이 글을 올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삼위일체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저 이 말씀을 올리고 갑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라며 항상 은혜와 성령이 함께 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삼위일체의 의미와 신비

기독교는 지금까지 삼위일체(Trinity)에 대하여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 있었다.
기독교 신앙이 목적하는 바는 육(이성)이 아니라 영이며(롬8:6) 영에 도달시킬 방법은 오직 성령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육의 사람들은 이성에 의한 논리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성서에 대한 사실을 논증시켜 주어 믿음에 도달시키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중략)
기도할 때와 대화 중에도 언제나 배운 그대로 삼위일체론에 의거해서 성부 즉 하나님 아버지만을 고집했던 어느날 우연히 들은 평신도들끼리의 대화를 듣고 부터 내 신앙을 다시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A : 오늘 나 하나님께 응답 받았어.
B : 주님이 뭐라고 그래?
A : 응, 성령께서 나보고 사명이 있으니 신학교에 입학하라고 하셨어.
B : 하나님께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으니 좋겠다. 이제부터는 평신도가 아니니까 하나님의 종답게 믿음으로만 살아.

평신도들의 이런 일상적으로 하는 대화를 통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그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교회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있으며, 접할 때마다 그들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하나님, 주님, 성령등 어느 호칭을 부르던 자연스럽게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삼위일체가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앙의 일상에서는 삼위일체가 이미 합의가 되어 생활화 되었는데 거꾸로 신학에서는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2. 삼위일체의 신비
1)신학적 해석
삼위의 위격(Three Persons)에 대하여 물을 비유로 설명한다면 물은(H2O) 즉 수소(H2)와 산소(O)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때 물을 성부, 산소는 성자, 수소를 성령이라는 형식으로 설명해 보자면 산소와 수소가 일정한 비율에 의해 결합되어 물이 되기 이전의 각각의 개체인 산소 하나만을 가지고 물이라 할 수 없으며, 또 수소 하나만을 가지고 물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산소를 수소라고 할 수 없으며, 수소를 산소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으로 삼위의 위격들을 설명할 수 있다. 곧 물은 물이며, 산소는 산소이고, 수소는 수소인 각각의 개체인 것이다. 이러한 각 개체의 본질은 물이다. 또 산소, 수소가 함께 있을 때 물이라 한다. 또한 물 안에 산소, 수소는 동등하며 수소와 산소도 물 안에서는 동등하다. 산소, 수소는 완전하며 수소, 산소도 완전하다. 이제 산소, 수소, 물은 분리할 수 없는 일체로써 물이라 한다.

이와같이 '산소는 산소이면서 본질은 물이며 수소는 수소이면서 본질은 물이다' 라는 등식을 갖게 되는 것이며 이는 곧 위격으로만 본다면 성부는 성부, 성자는 성자, 성령은 성령으로써의 삼위는 각각의 고유한 위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동등하며 완전하며 분리할 수 없는 항상 영원히 함께 계시며 한 분으로만 작용하신다.
(중략)
3)신학적 해석의 모순
지금과 같은 신학적 해석 방법으로는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은 신비가 아닌 모순으로 만들
게 되는 결과만을 가져온다. '예수는 성령이다'라는 등식을 통하여 신학적 해석의 모순을
몇 가지 논증하고자 한다.

①성서적으로 '예수는 성령이다'의 고찰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다 "주는 영이시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고후3:17) 또 공동번역에서는 "주님은 곧 성령입니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다. 이미 성경을 이탈하면서 까지 무리하게 교리를 세우려고 해서는 안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성경이 최우선과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된다.

②삼위의 통일성에서 '예수는 성령이다'의 고찰
위격인 각각의 개체로써는 절대 따로따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개체만을 가지고 전체를 대표
할 수 없다. 그러나 통일성(일체)안에서는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거스틴이 주장하는 삼위일체의 원칙이다. ("한위격으로도 모든 분을 의미할 수 있다"라고 1권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물을 비유로 설명을 하자면 물로 형성이 되지 않은 각각의 개체로써는 '물은 물이며 산소는
산소이고 수소는 수소이다'라는 것만이 성립되지만 이것이 결합하여 물로 형성(통일)된 다음에는 각각 개체로써의 산소, 수소가 아니라 이미 산소는 물이고 수소도 물이다 라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성 안에서는 삼위 중 하나가 전부를 대표할 수 있다. 곧 성부는 성자이며 성령이다. 성자는 성령이며 성부이다. 성령은 성부이며 성자이다 라는 등식이 성립이 되며 표현될 수 있다. 이러한 등식이 성립될 수 없다면 그것은 통일성(일체, 본질)이 아니다. 통일성 안에서는 삼위께서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기에 '예수는 성령이다'가 성
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성령이다'라는 것이 신학적으로는 성립이 될 수 없는 것은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즉 각각의 위격의 관계에서 위격 단독만을 해석할 것인가. 아
니면 삼위의 통일된 위격 안에서의 위격을 해석하는지의 차이인 것이다.

한 위격으로만 생각하면 절대 성부는 성부이며, 성자는 성자이고 성령은 성령인 것이다.
여기에서 신학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많은 오해가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주장은 각각의
위격과 동일성 안에서의 통일된 위격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위격으로만 보면 '예수는
성령이다'가 절대 성립될 수 없지만 통일성안에서는 얼마든지 '예수는 성령이다'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

위에서도 물로 설명했듯이 각각의 개체인 수소와 산소가 물로 이미 형성된 뒤에는(통일성) 산소는 물이며, 수소도 물이며 물도 물이 되는 것처럼. 삼위의 통일성안에서는 성부=성자=성령, 성자=성부=성령, 성령=성부=성자가 되는 것이며 성부, 성자, 성령은 불사하시며 동일하신 일체이며 한 분의 위격으로 모든 분을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⑤주의 영에 대한 '예수는 성령이다'의 고찰
어거스틴은 '영(성령)을 성부의 영은 성자의 영이며 성령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수는 성령이다'라고 한다면 신학적 삼위일체에는 위배이다. 신학이 삼위일체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는 영이시며, 주의 영은 성령이다'라고 한다면 신학적 삼위일체에 전혀 훼손하지
않는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또는 '예수는 영이시고(고후3:17) 예수의 영은 성령이다'라고 해도 삼위일체를 훼손하지도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는 성령이다'와 '예수님의 영은 성령이다' (또는 '주의 영은 성령이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해석상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도 없는 똑같은 말이다.

성부의 영은 성자의 영이며 성령이다 라는 성서적 표현 만큼 삼위일체를 완전하게 극복하고 함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이미 이 안에 성부는 성령이시며 '예수는 성령이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중략)
신학을 향한 충고
'예수는 성령이다'라고 하면 사벨리우스 (Sabellius)의 양태론(Modalismus)을 운운하며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성급하고 극단적인 편견은 버려야 한다. 만약 이러한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어거스틴도 양태론자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그 이유는 신학자들이 너무 잘 알고들 있을 것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 처럼 삼위일체가 자신들의 주장만으로 또 다시 악용되거나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만 한다.
(중략)
"...이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서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5:38-39)라고 가말리엘 교법사가 말한 것과 같이 1,600여년 동안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이 지탱해 주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제는 어거스틴이 주장한 참 삼위일체의 사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해석상의 오류로 말미암아 '예수는 성령이다'를 부정함으로써 형식상으로는 삼위일체 신앙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 내용 면에서는 이위일체 신앙들을 고수하고 있다. 곧 성부와 성자만 있지 성령이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균형 있는 삼위일체 신앙으로 돌아갈 때만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바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http://new-jerusale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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